[우먼센스] 바야흐로 KBO리그의 ‘전성시대’다. 2024시즌 사상 최초 1,000만 관중 시대를 열더니, 2025시즌에는 1,2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신축 구장 건설과 성적 반등이 시너지를 낸 한화 이글스는 홈 73경기 중 62경기에서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대박’의 중심에 섰다. 이외에도 다수의 구장은 '암표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을 만큼 뜨거운 열기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리그 은퇴 선수들이 출연하는 야구 예능 프로그램들조차 여러 악재 속에서도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1200만 관중을 돌파한 KBO는 리그 전성기를 맞았다. 사진=박정훈 기자(이오이미지)
KBO리그 흥행의 상승곡선은 2000년대 후반 국가대표팀이 거둔 호성적에서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현시점 한국 야구의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은 ‘국가대표팀 성적’ 그 자체다. 과거 황금기와 비교했을 때 최근 국제대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부진이 뼈아팠다. 준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 이후 열린 세 번의 대회에서 대표팀은 1라운드 관문조차 넘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다시 한번 WBC 개막이 임박했다. 오는 3월 5일 대회 일정이 시작된다. 국가대표팀 운영 주체인 KBO로서는 이번 대회를 벼를 수밖에 없다. 그간 고개를 숙여왔던 야구 국가대표팀은 과연 이번 대회에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황금기 이후 17년, WBC 3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
2006 WBC 3위,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으로 순항하던 한국 야구 대표팀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2013년 대회 당시 직전 대회 준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했으나, 1라운드에서 B조 3위에 그치며 본선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대만과 네덜란드에 2라운드 진출권을 내준 결과였다.
2023 WBC 한일전 4-13으로 패배 이후 침울한 표정의 선수들. 사진=연합뉴스
이전의 강한 전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으나 정확한 진단은 어려웠다. 2010년부터 아시안게임에서만큼은 지속적으로 금메달을 수확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항저우 대회까지 4연패를 기록 중이다.
다만 금메달 획득 과정에서 대표팀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2018년 대회 도중 대만에 패한 경기가 거센 비판을 불러왔고, 당시 감독이 국회에 소환되어 선수 선발 등을 놓고 질타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아시안게임은 어린 선수 위주로 출전하는 한국 야구만의 자체적인 선발 룰이 생기기도 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주최 프리미어12에서는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냈다. 초대 대회인 2015년에는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2019년에도 간발의 차로 준우승을 거뒀다. 덕분에 WBC에서의 부진이 다소 가려졌고, 그 사이 올림픽에서 야구 종목이 사라지며 약화된 전력이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지 않기도 했다.
야구 대표팀에 대한 팬들의 시선이 냉담하게 돌아선 결정적 계기는 2020 도쿄 올림픽이었다. 12년 전 금메달 주역 김경문 감독이 재등판했으나 최종 4위에 머물렀다. 결과도 아쉬웠지만, 역전패로 내준 동메달 결정전 등 과정 면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이후 대표팀을 향한 시선은 차가워져만 갔다. 2023 WBC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고, 2024년에는 그간 선전하던 프리미어12에서도 5위에 그쳤다. 특히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대만에 패하며 최종 4팀이 겨루는 슈퍼 라운드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압도적 위상의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이 나서는 WBC에서 대등하게 싸우던 시절은 과거가 됐다. 핵심 자원들의 노쇠화와 부상, 빅리그 진출에 따른 차출 어려움 등이 겹치며 대표팀의 경쟁력은 급격히 하락했다.
세대교체와 에이스 복귀, 명예회복을 향한 체질 개선
하락세를 타던 국가대표팀은 강력한 ‘체질 개선’을 예고했다. KBO는 2023년 여름 ‘KBO리그·팀 코리아 레벨 업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다년간 대표팀을 지탱하던 베테랑들과 작별하고 영건 위주로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2024 프리미어12 당시에는 전원 1990년대 이후 출생자로만 구성된 ‘젊은 엔트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류중일 감독은 꾸준히 ‘세대교체’를 외쳤고, 이는 KBO 및 기술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친 기조였다. MLB 구단이나 타국 대표팀과의 친선전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것도 이전에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움직임이었다.
KBO와 대표팀은 2026년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았다. 그간 진행해 온 세대교체 시도가 결실을 볼 시기이자, 3월 WBC를 시작으로 9월 아시안게임, 그리고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명예회복의 로드맵이 시작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허구연 총재. 사진=특별취재단.
이번 대회는 허구연 KBO 총재에게도 중요한 기로다. 2022년 취임 후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와 피치클락 도입, 리그 흥행 성공 등으로 호평받고 있는 그에게 대표팀 성적 회복은 마지막 남은 과제다. 지난 2023 WBC 당시에도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1라운드 탈락이라는 결과에 큰 상심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휘봉은 류지현 감독이 잡았다. 2025년 1월 선임된 그는 1년 넘게 오직 WBC만을 바라보며 팀을 정비했다. 대표팀 수석코치 출신으로서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준비 과정도 남달랐다. 류 감독은 대회 1년 전부터 후보군 선수들과 심층 면담을 가졌고, 지난 1월에는 개막을 두 달 앞두고 사이판에서 이례적인 1차 조기 캠프를 실시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지난 2월 6일 공개된 최종 엔트리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무조건적인 세대교체 기조에서 벗어나, 리그 정상급 기량을 유지 중인 베테랑들을 전격 합류시킨 것이다. 특히 투수진의 노경은과 류현진의 발탁이 눈길을 끈다. 1984년생으로 대회 기간 중 42세가 되는 노경은은 역대 최고령 대표팀 발탁 기록을 세웠다. 그는 지난 두 시즌 동안 각각 38홀드, 35홀드를 기록하며 최고령 홀드왕에 오르는 등 현재 리그 최고의 불펜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참고를 돕기 위한 생성형 AI 사진.
류현진은 자타공인 한국 역대 최고의 투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 WBC 준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무려 1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프로 데뷔 21년 차를 맞아 전성기 위력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지만, 2025시즌 26경기 9승 7패 평균자책점 3.23을 기록하며 여전히 국내 정상급 선발 투수임을 입증했다.
한국계 빅리거의 대거 발탁도 이번 대표팀의 핵심 승부수다. WBC는 선수 본인이 시민권이 없더라도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명이 해당 국가 출생이거나 시민권을 보유했다면 출전이 가능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번 대표팀은 이를 적극 활용해 투수 라일리 오브라이언과 데인 더닝, 야수 셰이 위트컴과 저마이 존스를 합류시켰다. 이들은 빅리그 이적을 앞둔 김혜성, 이정후, 그리고 해외파 고우석 등과 시너지를 내며 대표팀 전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최근 대표팀 선발진의 한 축이던 원태인과 문동주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마운드 운용에 변수도 생겼다. 젊은 에이스 카드가 빠진 상황에서 남은 투수 자원들의 역할 분담과 경기 초반 운영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1라운드 통과가 최우선 과제, 대만과의 2라운드 티켓 쟁탈전
이번 2026 WBC 대표팀의 최우선 지상 과제는 1라운드 통과다. 조별리그 이후의 단계는 지난 17년간 한국 야구가 밟아보지 못한 무대다. ‘에이스’ 류현진 역시 인터뷰에서 “선수들과 함께 미국(본선 라운드 개최지)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싶다”며 절실함을 드러냈다.
참고를 돕기 위한 생성형 AI 사진.
대표팀은 1라운드 C조에 편성되어 체코, 일본, 대만, 호주를 차례로 만난다. 전 대회 우승팀 일본이 여전히 압도적 전력을 자랑하는 가운데, 한국은 대만과 2라운드 티켓 한 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전망이다. 류지현 감독은 전력 분석을 위해 대만을 직접 방문했을 정도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 역시 대만전을 이번 대회의 최대 분수령으로 꼽는다.
2024 프리미어12 우승팀인 대만 역시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다수의 해외파를 소집했다. 30인 엔트리 중 NPB(일본프로야구) 소속 5명, 마이너리그 소속 9명이 포진했으며, 이 중 2명은 대만계 미국인이다. 빅리그 경험이 풍부한 외야수 스튜어트 페어차일드 등이 합류한 점도 위협적이다. 다만 내셔널리그 신인왕 출신 코빈 캐롤이 결국 미국 대표팀을 선택한 것은 한국에 불행 중 다행인 요소다.
이제 다시 공은 던져진다. 17년 만의 ‘WBC 잔혹사’를 끊어내고 2라운드 진출을 향한 도전에 나서는 명예회복의 시간은 선수들의 몫으로 남았다. 역대 가장 뜨거운 KBO리그의 열기가 국가대표팀 유니폼에까지 옮겨붙어 한국 야구의 부활을 이끌 수 있을지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Credit Info MAGAZINE 우먼센스 글 김상래 일요신문i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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