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센스] 익숙한 하루가 반복될수록, 문득 다른 시간과 공간이 그리워진다. 가보지 못한 과거의 어느 거리,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세계, 혹은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까까지. 올해 공개를 앞둔 드라마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를 '지금 여기'가 아닌 곳으로 데려간다. 올봄부터 연말까지, 당신이 잠시 머물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보자.
가보지 못한 시절 속으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풍경에는 묘한 낭만이 있다. 그 시절의 공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천천히 강렬하게 | 넷플릭스 4분기 공개 예정
'천천히 강렬하게' 스틸, 사진=넷플릭스
'천천히 강렬하게' 스틸, 사진=넷플릭스
<괜찮아 사랑이야>,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와 섬세한 감정선을 그려온 노희경 작가가 오랜만에 신작으로 돌아온다. 그것도 데뷔 이후 처음 도전하는 시대극이다. 배경은 1960~1980년대 한국 연예계.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성공을 향한 열망 하나로 온몸을 던진 이들의 성장과 연대를 그린다. 화려한 스타의 탄생이 아니라, 무명 시절의 치열함과 청춘의 맨얼굴을 복원하는 휴먼 드라마다.
노희경 작가 특유의 ‘인물 중심 서사’도 여전하다. 거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이야기는 사람에게서 출발한다. 실패와 좌절, 사랑과 우정, 생존과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감정을 밀도 있게 따라가며, 그 시절을 살아낸 청춘들의 시간을 따뜻하게 담아낼 예정이다. 화려한 시대극이라기보다, 아날로그 감성과 인간적인 온기를 품은 ‘노희경표 드라마’에 가깝다.
캐스팅 또한 상징적이다. 공유는 노희경 작가와 이번이 첫 협업이다. 반면 송혜교는 작가와 세 번째 작품을 함께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첫 인연을 맺은 뒤 <우리들의 블루스> 특별출연을 거쳐 다시 정식 주연으로 재회하는 것. 익숙한 신뢰와 새로운 시너지가 동시에 기대되는 조합이다. 여기에 설현, 차승원, 이하늬가 합류해 세대를 아우르는 라인업을 완성했다.
연출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섬세한 멜로 감성을 인정받은 이윤정 감독이 맡았다. 7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로, 세트와 의상, 음악 등 시대 고증에도 공을 들여 60~80년대 한국 연예계의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할 계획이다. 웰메이드 제작진과 배우, 그리고 노희경 작가의 귀환이 만나며 올해 가장 기대되는 휴먼 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스캔들 | 넷플릭스 3분기 공개 예정
'스캔들' 스틸, 사진=넷플릭스
'스캔들' 스틸, 사진=넷플릭스
2003년 배용준·전도연 주연으로 352만 관객을 동원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이번 드라마는 원작의 도발적인 설정을 유지하되,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더욱 촘촘히 확장해 장편 서사로 재해석한다.
엄격한 유교 질서 아래 욕망을 숨겨야 했던 조선시대.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눌린 조씨부인과 조선 최고의 바람둥이 조원이 ‘사랑 내기’라는 위험한 게임을 시작하며 치명적인 관계에 빠져든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계급과 권력, 욕망이 얽힌 심리 멜로가 극을 이끈다.
자극적인 연출 대신 표정과 침묵, 긴장감으로 감정을 쌓아가는 정통 멜로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조씨부인 역은 손예진이 맡았다. 조원 역의 지창욱은 능청스러움과 위험한 카리스마를 오가는 연기 변신을 예고한다. 두 배우가 만들어낼 농도 짙은 심리전이 관전 포인트다.
화려함보다 절제, 속도보다 여백. 고전 멜로 특유의 품격을 현대적으로 복원할 <스캔들>이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 사극 로맨스로 기대를 모은다.
현혹 | 디즈니+ 하반기 공개 예정
'현혹' 스틸, 사진=디즈니+
1935년 경성. 반세기 넘도록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의문의 여인 송정화(배수지)와 그녀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화가 윤이호(김선호)의 이야기다. 세월이 멈춘 듯 늙지 않는 존재, 뱀파이어라는 비밀을 품은 송정화의 신비로운 세계에 윤이호가 발을 들이면서 두 사람은 운명처럼 얽힌다. 인간과 비인간, 삶과 영원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그린 판타지 멜로로,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결합한 고딕 감성이 짙다.
작품은 조선 말과 근대가 교차하던 경성의 풍경 위에 절제된 색감과 정적인 미장센을 얹는다. 초상화를 매개로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관계, 말보다 침묵이 많은 장면들, 느린 호흡의 감정선이 특징이다. 자극적인 장르물이라기보다 클래식 영화 같은 질감을 지닌 ‘어른 멜로’에 가깝다.
연출과 극본은 한재림 감독이 맡았다. <관상>, <사도>에서 시대극 특유의 묵직한 서사와 인간 심리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보여준 연출자다.
수지와 김선호의 재회 역시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스타트업> 이후 6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다. 당시 풋풋한 청춘 멜로였다면, 이번에는 보다 농도 짙은 성인 로맨스로 관계성이 확장됐다. 특히 김선호는 최근 이슈로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지만, 특유의 섬세한 감정 연기와 현실적인 캐릭터 소화력이 강점인 배우인 만큼 이번 작품이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상상 속 판타지 세계로
현실과 완전히 다른 곳으로 건너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낯선 세계일수록 상상력은 더 자유로워진다.
재혼황후 | 디즈니+ 하반기 공개 예정
'재혼황후' 스틸, 사진=디즈니+
웹소설과 웹툰으로 글로벌 팬덤을 형성한 판타지 대작이 동명의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가상의 세계 ‘동대제국’을 배경으로, 완벽한 황후 나비에와 황제 소비에슈, 노예 출신 라스타, 서왕국의 왕자 서인리까지 네 인물의 욕망이 얽히며 권력과 사랑, 배신이 교차하는 궁중 로맨스 판타지다.
황후 나비에는 신민아, 황제 소비에슈는 주지훈, 라스타는 이세영, 서인리는 이종석이 맡았다.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배우들이 중심을 잡는다. 신예 위주의 캐스팅이 잦은 최근 드라마 흐름과 달리, 검증된 배우들로 무게감을 더한 선택이 이 작품만의 차별점이다. 각기 다른 욕망과 입장을 지닌 인물들이 만들어낼 팽팽한 관계 구도에 기대가 쏠린다.
제작 스케일 또한 압도적이다. 프라하와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대규모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해 중세 귀족 사회의 질감을 구현했다. 실제 성과 궁전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풍경, 화려한 의상과 미술이 더해지며 국내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정통 판타지 비주얼을 예고한다. 탄탄한 원작 팬덤과 배우 라인업, 글로벌 스케일까지 갖춘 올 시즌 기대작 중 하나다.
21세기 대군부인 | MBC·디즈니+ 4월 공개 예정
'21세기 대군부인' 스틸, 사진=MBC
<선재 업고 튀어>로 신드롬을 일으킨 변우석이 이번엔 아이유의 남자가 된다. 청춘 로맨스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변우석과 ‘믿고 보는’ 흥행 카드 아이유의 만남만으로도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왕실을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라는 가상의 설정에서 출발한다. 돈과 능력을 모두 갖췄지만 왕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계에 부딪히는 재벌 성희주(아이유), 왕가의 피가 흐르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먼 둘째 왕자 이안대군(변우석). 서로 다른 결핍을 지닌 두 사람이 신분과 계급의 경계를 넘어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다.
아이유는 욕망과 추진력을 지닌 재벌 2세로 이미지 변신을, 변우석은 품위와 외로움을 동시에 지닌 왕자 역으로 또 한 번 스펙트럼을 넓힌다.
2022년 MBC 극본 공모 우수상 수상작으로 3년간 완성도를 다듬었으며, 연출은 박준화 PD가 맡았다. 현대 로맨스에 왕실 판타지를 더한 색다른 상상력, 그리고 가장 ‘핫한’ 두 배우의 만남만으로도 올 시즌 주목할 만한 트렌디 로맨스로 손꼽힌다. 특히 <선재 업고 튀어> 이후 작품 선택에 신중해진 변우석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이번 드라마는 그의 연타 흥행을 이어갈 시험대이자 배우로서 커리어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으로
다른 시공간이 아니어도 좋다. 때로는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 JTBC 4월 공개 예정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스틸, 사진=JTB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로 인간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온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의 화두는 ‘무가치함’이다. 영화계를 배경으로,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데뷔하지 못한 예비 감독 황동만(구교환)이 자신의 무가치함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평화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날카로운 시나리오 리뷰로 ‘도끼’라 불리는 영화사 PD 변은아(고윤정)는 겉으론 흔들림 없어 보이지만, 감정이 과부하될 때마다 코피를 쏟으며 트라우마와 싸운다.
제작진은 “시기와 질투라는 보편적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투명하게 직시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지독한 공감과 따뜻한 위안을 동시에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화려해 보이는 영화계 인물들의 불안을 들여다보며, 결국 '그들도 우리와 같다'는 위로를 건넨다. <동백꽃 필 무렵>, <웰컴투 삼달리>의 차영훈 감독이 연출을 맡아, 결핍을 다정하게 감싸 안는 시선을 더한다.
과거의 어느 시절로, 상상 속 세계로, 혹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올해 드라마들은 저마다 다른 문을 열어둔다. 어떤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볼까.
Credit Info MAGAZINE 우먼센스 글 정효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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