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중국 베이징 한 쇼핑센터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23세 청년이 세발자전거로 상품을 배달하고 있었다. 고객 눈길을 끌기 위한 판매 전략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에 야심 차게 가게를 열었지만 유명 브랜드와의 경쟁에 밀려 판매 실적이 좋지 못했다. 홍콩 드러그스토어 ‘로그온’을 모방해 ‘팝마트’라는 잡화점을 차렸는데 뚜렷한 개성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사업 수완은 자신 있었다. 대학생 시절 신입생들을 상대로 “캠퍼스 생활을 담은 영상을 고향 부모님에게 보여드리라”며 학교 풍경을 담은 콤팩트디스크(CD) 수천 장을 팔아 큰돈을 만졌다. 학교 근처 가게의 작은 진열장을 빌려 물건을 파는 ‘그리드(grid) 스토어’ 사업도 잘됐다. 어느 날 이 젊은 사장은 자기 가게에 있는 일본 캐릭터 인형이 많이 팔리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앞으로 어른도 소장할 수 있는 ‘아트토이’가 히트를 친다!”
“라부부 미니 버전 출시” 주가 11% 상승
최근 전 세계 M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라부부(拉布布)’ 인형 제조업체 팝마트를 창업한 왕닝(王宁) 최고경영자(CEO·38)의 창업 스토리다. 23세 사회 초년생이던 왕닝은 15년이 지난 올해 30조 원 재산을 가진 중국 10대 부호가 됐다. 팝마트의 대표 지식재산권(IP)인 라부부 열풍에 힘입은 결과다. 올해 상반기 팝마트는 매출 138억8000만 위안(약 2조7000억 원), 영업이익 60억4000만 위안(약 1조8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4%, 437% 성장했다. 시가총액은 4294억 홍콩달러(약 76조8400억 원)에 달한다(8월 21일 종가 기준). 8월 20일 콘퍼런스 콜에서 “휴대전화에 걸 수 있는 라부부 미니 버전이 이르면 이번 주 출시된다”는 왕 CEO의 한마디에 팝마트 주가는 11% 오른 310.60홍콩달러(약 5만5600원)로 2020년 12월 상장 후 최고가를 찍고 이튿날에는 319.80홍콩달러(약 5만7200원)로 기록을 경신했다(그래프 참조). 1년 전 40홍콩달러대였던 주가가 590% 이상 폭등한 것이다. 정가 59~69위안(약 1만1500∼1만3000원)짜리 작은 인형 라부부가 뭐기에 이토록 ‘대박’을 친 것일까.
라부부는 긴 귀와 삐쭉 튀어나온 이빨, 북슬북슬한 털을 가진 작은 괴물 캐릭터다. 홍콩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카싱 룽(Kasing Lung)이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라부부의 상품가치를 간파한 팝마트는 2019년 룽 작가와 독점 라이선스를 맺고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부부 인형은 서로 다른 디자인의 ‘시리즈’로 출시되는데, 현재까지 나온 종류만 300개가 넘는다. 해외에서 유행하기 전 라부부는 중국 현지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중국시장에서 라부부가 성공한 배경을 ‘소황제(小皇帝) 현상’과 ‘애국주의 소비’라는 키워드로 분석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오랫동안 1가구-1자녀 원칙을 고수한 중국에선 아이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문화가 자리 잡았다. 중국이 해외 브랜드 짝퉁을 만들어 수출하지만, 정작 중국 부모들은 자녀에게 고급 진품 완구를 사주려는 욕구가 강하다. G2 중국을 보고 자라난 젊은 층의 애국주의 소비 경향도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문화 소비에서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라부부는 이들 입맛에 딱 맞는 상품이다.”
라부부가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킨 결정적 계기는 글로벌 셀럽들의 ‘팬심’ 인증이었다. 특히 K팝 아이돌 블랙핑크 멤버인 리사가 2023년 10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라부부 키링 사진을 올린 게 주효했다. 축구 레전드 데이비드 베컴, 팝스타 리한나, 시리완나와리 나리랏 태국 공주 등 유명 인사가 잇달아 라부부 팬임을 자처했다. 이들을 따라 중국은 물론, 한국과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의 MZ세대는 자기 가방이나 핸드백을 장식하는 ‘백꾸’(가방 꾸미기)에 라부부를 애용하고 있다. 라부부가 인기를 끄는 원인에 대해 최지혜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MZ세대의 셀럽에 대한 선망과 더불어, 음식에 다양한 토핑으로 변주를 주듯이 기성품에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요소를 추가하는 ‘토핑 경제’ 소비 트렌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팝마트 특유의 판매 전략도 라부부 열풍에 한몫했다. 팝마트는 라부부 등 캐릭터 상품을 판매할 때 ‘블라인드 박스’ 전략을 취한다. 일본 완구업체 ‘반다이’의 뽑기형 캡슐 자판기 브랜드 ‘가챠폰’처럼 박스를 열기 전에는 어떤 라부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같은 랜덤 판매 전략이 소비자의 기대감과 수집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1.39% 확률로 나오는 한정판 제품 ‘시크릿 버전’도 팬들의 소장욕을 자극한다. 일부 인기 많은 시크릿 버전이나 다른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한정판 라부부는 수백만 원에 리셀(resell·재판매)되기도 한다.
스컬판다·크라이베이비로 인기 배턴 터치
라부부 열풍에 탄력을 받은 팝마트 성장세는 계속될까. 일단 해외 투자자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전병서 소장은 “제조업 국가 이미지가 강한 중국에서 팝마트가 이례적으로 캐릭터 상품으로 대박을 터뜨리자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선 ‘라부부가 제2의 마오타이(중국 특산 증류주)’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라부부 인기가 팝마트의 또 다른 캐릭터로 옮겨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근 1020세대를 중심으로 팝마트의 ‘스컬판다’ ‘크라이베이비’도 인기를 끌고 있다.
향후 팝마트의 주가 및 실적 전망에 대해 이현지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팝마트의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실적 개선 폭도 상당히 크다는 점에서 주가가 그다지 고평가된 것 같지는 않다”며 “팝마트가 라부부는 물론, 다양한 IP를 꾸준히 발굴하고 있어 올해 하반기 실적도 가이던스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Credit Info 글 김우정 기자 제공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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