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스크립트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습니다. 설정을 통해 자바스크립트를 허용하거나 최신 브라우저를 이용해주세요.

서울사랑(서울특별시)

잠 못 드는 밤에는 한강으로

by 서울사랑(서울특별시)

8월 초·중순이면 서울의 열대야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요즘처럼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열대의 밤을 피해 한강으로 모여들었다. 한강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여름밤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시절 한강의 열대야 풍경.

한강공원에서 무더위를 식히는 시민들. 2000년 여름. ©연합뉴스 

 집 안에 갇힌 더위는 잠을 쫓아냈다. 선풍기는 연신 파란색 날개를 돌렸지만, 그 둔탁한 소음은 오히려 단잠을 밀어낼 뿐이었다. 손으로 부채질을 더해도 역부족이었다. 어린 시절엔 어머니의 자장가와 가벼운 손바람만으로도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 서울에는 바람 한 점 없는 열대야가 어김없이 찾아왔고, 요즘처럼 에어컨이 집집마다 놓이지 못했으니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듯 발길은 한강으로 향했다.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오는 이도 많았다. 모두가 강변의 바람 한 줄기를 찾아 모여들었던 것이다.

찜통더위를 피해 한강으로!

한강은 그 시절 서울 사람들에게 거의 유일한 피서지이자 쉼터였다. 집 앞 골목길이나 동네 공터에서 돗자리를 펴기엔 습기와 모기떼를 이기기 어려웠고, 에어컨은 사치품처럼 여겨지던 시절.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주섬주섬 돗자리와 수박 한 통을 챙겨 강변으로 향했다.

여의도 한강 둔치에는 해가 지기 전부터 자리를 잡는 가족이 많았다. 아이들은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며 흙먼지를 일으켰고, 몇몇은 웃통을 벗어 던진 채 농구나 족구 시합에 열을 올렸다. 어른들은 돗자리에 앉아 일찍부터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옆에선 수박이 툭툭 잘려나갔다. 아이들은 수박 한 조각을 들고 씨를 뱉으며 깔깔댔고, 어른들은 더위 속에서도 서로의 하루를 묻곤 했다. 그 시절의 열대야는 웃음과 이야기가 흐르는 시간이었다.

밤이 깊어가며 한강의 공기는 조금씩 선선해졌다. 어른들은 돗자리에 대자로 누운 채 코를 골기 시작했고, 술에 취해 잔디밭 구석까지 밀려나 잠든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분위기에 취한 탓인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강 건너편의 불빛이 반짝이며 수면에 흔들릴 때, 아이들은 그 불빛이 별인 줄 알고 손가락질을 하며 잠을 미뤘다.

돗자리와 모기향만 있다면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 한강을 정비하기 전까지 한강 둔치는 쾌적한 공간이 아니었다. 조명이 부족한 탓에 강변은 어둠에 잠기기 일쑤였고, 화장실은 멀고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낭만이었다. 사람들은 돗자리 하나로 어디서든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고, 옆 사람과 부대끼며 오가는 소리도 어느새 여름밤의 배경음이 되었다. 이웃과 함께 부채질을 하며 수박을 나눠 먹고, 모기향 하나에 모두가 발을 모으던 시절이었다.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 속엔 연인도 많았다. 밤바람을 맞으며 손을 잡고 강변을 거닐던 그들은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캔맥주를 기울이며 별을 세던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소박하고 따뜻한 풍경이었다. 나는 열대야도 피할 겸 시원한 강변에서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한강을 찾곤 했다.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 대학 새내기들, 회사에서 늦게 퇴근한 직장인들까지 한강에는 모든 세대가 뒤섞였다. 누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 최헌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고, 누구는 기타 연주에 맞춰 콧노래를 불렀다. 물론 몇몇은 흙바닥에 앉아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강바람은 때때로 젖은 셔츠를 말려주었고, 그 순간의 여유는 한여름 밤 서울의 더위가 잠시 멈춘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이따금 갑자기 쏟아지는 여름비는 강변에 모인 사람들을 허둥지둥 움직이게 만들었다. 돗자리는 급히 접히고, 수박 껍질은 비닐봉지에 담겼으며,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또한 열대야의 추억이었다. 비에 젖은 바지와 수건, 그리고 그날 강변에서 만난 얼굴들은 다음 날이면 다시 일상 속으로 사라졌지만, 마음 한구석에 작은 물결처럼 남았다.

1999년 여름. 사람들이 열대야를 피해 뚝섬한강공원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시절 여름밤의 낭만

21세기에도 우리의 한강은 여전히 여름밤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이제 말쑥한 한강공원 곳곳에서는 LED 조명이 반짝이고, 배달 앱으로 주문한 음식이 깔끔한 박스에 담겨 도착한다. 수박 대신 피자와 치킨을, ‘아이스 냉차’가 아닌 와인과 치즈를 한강에서 즐긴다. 더 편리하고 세련되어졌지만, 이따금 옛 시절의 불편했던 낭만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흙바닥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풋풋한 감성은 그 밤의 찜통더위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만 같다. 요즘도 가끔 여름밤이면 한강으로 향한다. 깨끗한 강변에 앉아 있으면 그 시절의 사람들이 하나둘 곁에 와서 앉는 것만 같다. 웃음소리와 부채질, 수박 자르는 소리와 FM 라디오 선율. 한강은 기억을 담은 풍경이고, 여름밤은 그 추억을 끌어안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강의 열대야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우리 마음에 흐르고 있다.

Credit Info
정명효
제공 서울사랑(서울특별시)

※ 서비스 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해당 제공처에 있습니다. 웨더뉴스에는 기사를 수정 또는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므로 불편하시더라도 기사를 제공한 곳에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 알아보기

서울사랑(서울특별시)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지하철역에 똑똑한 운동장이 생겼다

    thumbnail
    2025-08-20 00:00:00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핫’한 한강공원 수영장, ‘쿨’한 여름

    thumbnail
    2025-08-18 00:00:00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숲과 계곡에서 휴식과 충전을!

    thumbnail
    2025-08-16 00:00:00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케이팝 데몬 헌터스 & 오징어 게임 촬영 명소 글로벌 드라마 속 서울을 찾아서

    thumbnail
    2025-08-14 00:00:00

BEST STORIES

  • cp logo

    마인드스위치

    숲에 쏟아지는 시원한 빗소리

    thumbnail
    2025-08-18 00:00:00
  • cp logo

    이코노믹리뷰

    발만 담가도 시원한 ‘양평 계곡’ 추천 3곳 [ER여행]

    thumbnail
    2025-08-20 00:00:00
  • cp logo

    NOL 인터파크투어

    베트남 우기 지역별 기간! (ft. 다낭, 푸꾸옥, 나트랑 풀빌라 리조트 총정리)

    thumbnail
    2025-08-16 00:00:00
  • cp logo

    사물궁이 잡학지식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 중 어디에 가까울까?

    thumbnail
    2025-08-21 00:00:00

핫플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한강에서 수영과 물놀이를

    thumbnail
    2025-07-23 00:00:00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미지의 서울을 따라

    thumbnail
    2025-07-21 00:00:00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색다른 체험이 기다리는 공원을 찾아서

    thumbnail
    2025-05-24 00:00:00
  • cp logo

    서울사랑(서울특별시)

    잠수교를 걷는 여덟 번의 일요일

    thumbnail
    2025-05-2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