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달라졌다. 책을 좋아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책과 사람, 취향이 공존하는 북 클럽이 인기다.
이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뿐 아니라 책에 관한 모든 것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요즘 북 클럽에서는 필사는 기본, 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이 함께 이뤄진다.
최근 북 클럽이 20~3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책과 굿즈, 이벤트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북 클럽은 이제 출판사와 독자를 직접 연결하는 커뮤니티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대형 출판사를 중심으로 회원 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북 클럽 열풍은 단순한 독서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의 중심에는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공유하는 것’으로 여기는 MZ세대의 새로운 독서 감각이 자리하고 있다.
힙독클럽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북 큐레이션을 제안한다.
읽는 것에서 노는 것으로, 북 클럽의 진화
북 클럽의 인기는 MZ세대의 독서 방식과 감성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들에게 독서는 단순히 ‘읽기’가 아니라 ‘보여주기’, ‘공유하기’ 그리고 ‘함께 즐기기’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을 기록하고,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취향에 맞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북 클럽의 형식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술 한잔, 음식 한 접시를 곁들이는 캐주얼한 모임부터 내성적인 이들을 위한 비대면 온라인 북 클럽까지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참여 방식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방식은 물론 혜택도 다양하다. 북 클럽 회원이 되면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에 참석하거나, 책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결국 북 클럽은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 지적이고 감성적인 취향을 공유하며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 소비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북 클럽을 알아보고 가입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정해 여러 사람이 읽은 후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굉장히 신선하고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혼자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완독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독서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_ 최부열
서울에서 만나는 진짜 북 클럽, 힙독클럽
요즘 유행하는 북 클럽 중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야외도서관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힙독클럽’이다. SNS 광고를 통해 힙독클럽을 알게 된 김정민 씨는 대학교 동기들과 함께 얼마 전부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프로그램 덕분에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힙독클럽은 온라인 시스템이 특히 잘되어 있어요. ‘나의 서재’에서 독서 진도를 기록할 수 있어 효율적인 독서가 가능하고, 인상 깊게 읽은 도서는 ‘완독 인증’을 통해 친구들뿐 아니라 다른 회원들과도 감상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현재 1기 회원들이 활동 중인 힙독클럽은 작가와의 만남, 독서 토의, ‘벽돌책 격파단’, ‘최애책 영업단’ 등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온라인 활동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오프라인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어 참여자들에게 색다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보라매공원과 운현궁에서는 도심 속에서 잠시 벗어나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며 책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광화문, 청계천 등에서도 진행 중인 서울야외도서관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책과 함께하는 새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 힙독클럽이란?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을 위한 전국 최초의 공공북클럽. 다양한 책과 주제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모이는 리딩몹, 다양한 명소에서 야외 독서를 즐기는 노마드 리딩 프로그램 등 즐거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지난 4월에 모집을 마감한 1기 회원들이 12월 말까지 활동하게 된다.
특별한 커뮤니티와 독서 혜택, 북 클럽의 인기 요인
서울야외도서관 힙독클럽처럼 참여형 콘텐츠와 커뮤니티 중심의 북 클럽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 클럽들 역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소확행’이 ‘추구미’인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북 클럽은 가성비 좋은 문화 활동이자, 지적 만족과 취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경험형 소비다.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북 클럽 커뮤니티는 소수 정예의 전통적인 독서 모임과 달리 규모감 있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하며,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에 참석하거나 책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등 더욱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실제 사례로 출판사 민음사가 모집한 ‘민음북클럽’은 가입 첫날에만 5,000명이 몰리며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2주 만에 1만 명 정원을 마감했다. 문학동네의 북 클럽 ‘북클럽문학동네’는 결성 6년 만에 5배 가까이 성장해 현재 누적 회원 수가 4만 명을 넘는다. 이들은 출간 전 표지 시안 투표, 책 제작 과정 참여 기회 등 팬덤 중심의 소통 방식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문학과지성사는 올해 북 클럽 가입자들에게 저자 사인 시집, 첫 시집 읽기 가이드, 시작 노트와 북 홀더 세트 등이 포함된 특별 키트를 선물로 제공하며 독서 경험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다양한 필사를 경험해볼 수 있다.
지난 6월 서울책보고에서 열린 시 모임.
온· 오프라인에서 더 다양해진 북 클럽의 모습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독서와 사람을 잇는 연결 방식은 훨씬 더 유연해졌다. 서울 해방촌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황재영 씨는 매주 화요일 저녁에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책 교환·독서 퀴즈·북 클럽 등 프로그램이 점차 늘어났고, 참여자들의 반응도 좋아졌다. 서울책보고에서 열린 ‘형형색색’ 활동에 참여한 강혜인 씨는 책을 매개로 한 낯선 연결을 즐긴다. “기발한 활동이 많아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책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기분이에요. 어느 순간 연결돼 있는 느낌도 들고요.” 한편 정기 모임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북 클럽이 인기다. 8개월째 온라인 북 클럽 활동을 하고 있는 윤서라 씨는 말한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만, 매번 약속 잡고 나가는 건 좀 힘들더라고요. 영상 통화로 1시간 동안 조용히 책만 읽는 온라인 북 클럽은 저한테 딱이에요. 책 읽기를 끝내야 한다거나 독서 감상을 꼭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서 마음도 편하고요.”“오늘 서울책보고에서 헌책을 이용한 ‘마음의 정원 만들기’ 활동을 했어요. 책을 이용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 봤지만 이렇게 특이한 체험은 처음이에요. 책을 오리고 붙이며 정원을 완성해가는 여정을 통해 저를 발견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_ 강혜인
놀이를 넘어 새로운 연결의 장으로
북 클럽 열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독서가 더 이상 혼자만의 조용한 취미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셜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북 클럽이 단순히 책을 읽는 모임에 그치지 않고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연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각종 독서 활동은 참여자들에게 지속적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인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쳐온 나민애 교수는 “사람들이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라며 북 클럽 문화가 사회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울야외도서관 힙독클럽 회원들 역시 혼자 읽는 즐거움에서 나아가 타인과 감상을 공유하고, 작가와 직접 만나는 기회를 통해 더욱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누리고 있다. 온라인 활동과 커뮤니티 참여를 통해 책을 매개로 한 소속감과 연결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 힙독클럽 회원이 노마드 리딩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독서하고 있는 모습.
책을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 출판계의 새로운 동력이 되다
이제 독자들은 책을 읽는 것뿐 아니라, 책을 둘러싼 감각적 체험과 사람 간의 연결까지 함께 소비하고 있다. 이처럼 독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자 출판 산업 전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자책과 오디오 북 시장의 성장, 구독형 서비스의 확산은 북 클럽 열풍이 만들어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한 축이다. 서울책보고의 북 클럽 활동을 기획해온 김수현 본부장은 이러한 변화를 ‘평면적 체험에서 입체적 체험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확실히 책 문화 트렌드가 더 넓은 소통과 깊이 있는 체험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더 이상 독서가 개인적 체험에 머무르지 않는 만큼 달라진 트렌드에 걸맞게 중소형 북 토크, 서울야외도서관, 책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모색하며 큐레이션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북 클럽에서 단지 책만 읽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종이’로 만든 책만 책이라는 고정관념도 이제는 낡은 틀이다. 지금 이 시대의 독서는 놀이이며, 북 클럽은 애서가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놀이터인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공유 서점’이라는 새로운 독서 공간을 제안하는 후암서재의 내부. 내 집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추천한 책을 읽을 수 있다.
+ 책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공간
서울야외도서관
서울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혁신적인 야외도서관으로, ‘책읽는 서울광장’과 ‘광화문 책마당’, ‘책읽는 맑은냇가’가 있다. 디지털 디톡스와 함께 책에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멍, 경복궁을 배경으로 로맨틱한 영화에 빠져보는 ‘달빛낭만극장’, 잔디광장에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잔디씨어터’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책읽는 서울광장 중구 세종대로 110 광화문 책마당 종로구 세종대로 175 책읽는 맑은냇가 청계천(모전교~광통교) 누리집 seouloutdoorlibrary.kr
서울책보고
북 큐레이션 공간인 ‘큐레이션서가’, 작가가 추천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덕질존’, 감성 브랜드의 굿즈와 오브제를 전시한 공간 ‘취향상점’, 두 달 마다 주제가 바뀌는 ‘팝업서가’, 손으로 따라 쓰며 마음을 정화하는 필사 전용 공간 ‘필사적’을 통해 나만의 독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주소 송파구 오금로 1(잠실나루역 1번 출구 1분) 인스타그램 @bookbogo_seoul
Credit Info 글 임지영 사진 김재형, 박준석 제공 서울사랑(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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