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기분 좋은 바람이 간절해질 때마다 고수부지라고 불리던 한강 둔치로 향했다. 신촌과 강남 혹은 종로 뒷골목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도 충분치 않다고 느껴질 때, 햇살이 수면 위로 부서지는 탁 트인 풍광을 찾아 한강으로 갔던 것이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야 했지만, 한강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의도 너른 벌판엔 벌써 돗자리가 깔려 있었고, 광나루에서는 누군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흙먼지 자욱한 벌판에서 우리는 신발을 벗고 뛰어다녔다.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탄 무리가 삐걱거리며 강변을 누비기도 했다. 낡은 라디오의 선율과 함께 막걸리와 통닭 냄새 섞인 웃음과 고백이 한강의 저녁을 떠돌았다.
한강은 젊음의 정거장이었다. 어릴 적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뽑기 장난감을 사던 강변이었고, 중학생이 되자 친구와 처음 밤을 새우며 별을 보던 곳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밤새 술을 홀짝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숨통 같은 공간이었으며, 누군가의 이별이 있고 , 또 다른 누군가의 첫 입맞춤이 있던 무대였다. 그 시간들은 모두 한강 둔치라는 이름 아래 펼쳐졌고, 마치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선명했다. 하지만 한강 둔치는 지금의 한강공원처럼 조경과 환경이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았다. 잔디는 군데군데 패었고, 화장실은 멀었으며, 가로등은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렇지만 불편함은 낭만의 양분이었다.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앉아 누군가는 시를 읽고, 또 누군가는 술잔을 기울이며 철없는 사랑과 덜 자란 인생을 읊조렸다 . 때론 낯선 이와 어깨를 부딪치며 농구를 하고, 모랫바닥에서 기타 줄을 튕기는 누군가를 따라 돌림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자유는 그렇게 투박한 공간에서 환하게 피어났다.
1980년대는 서울이 급변하던 시기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인의 시선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한강 또한 그 중심에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서울시는 강변을 정비하고, 둔치를 새로 조성했다. 주로 한강의 범람을 막는 역할을 하던 둔치는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변신을 꾀했다. ‘큰물이 날 때만 물에 잠기는 하천 언저리의 터’라는 뜻의 일본식 한자어‘ 고수부지(高水敷地)’로 불리던 이곳의 이름은 ‘둔치’라는 우리말로 대체되어 서울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 잡았다. 흙냄새 가득하던 둔치는 점차 잔디밭으로 채워졌고, 다양한 체육 시설과 넓은 자전거도로가 들어서면서 젊음의 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그 시절에도 빠질 수 없는 것이 한여름 밤의 축제였다. 한강을 배경으로 펼쳐진 방송사들의 ‘록 콘서트’에서 송골매, 시나위, 백두산 같은 록 그룹의 요란한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면 둔치에 모여 앉은 청춘들의 몸과 마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한강은 책을 읽고, 농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던 낯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다. 한강 둔치는 그때의 청춘들에게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에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추억을 쌓는 삶의 무대였던 셈이다.
내 청춘, 햇살 받던 날
2000년대에 들어 대대적인 한강 재정비 사업이 진행됐다. 투박하고 덜 정돈되었던 둔치는 한강공원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깔끔하고 세련된 휴식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의도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을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리고, 반포의 달빛무지개분수 아래서 아이들이 웃고, 난지캠핑장에서는 젊은 커플이 별을 헤아린다.
모양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강물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우리는 그 곁을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은 강을 떠날 수 있지만, 강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이따금 나는 한강을 찾는다. 둔치에서 처음으로 속마음을 꺼냈던 그 시절의 친구들과는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지만, 벤치에 앉아 강바람을 맞고 있으면 문득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한강 풍경은 변했고 사람들의 옷차림과 말투도 달라졌지만, 가슴 어느 틈에 남아 있는 추억의 잔영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젊음의 한 조각은 여전히 그 시절의 한강 둔치 어딘가에 남아 있다.
Credit Info 글 정명효 제공 서울사랑(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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