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의 한 장면. 이 드라마 제작비는 편당 16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제공
아이유·박보검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3월 7일 첫 공개와 동시에 큰 화제를 모았다.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주가는 급등세를 탔다. 3월 10일 장중 상한가를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그러나 ‘일주일 천하’였다. 같은 달 14일을 고비로 상승세가 꺾였고, 5월 20일 기준 주가는 드라마 방영 전보다 20% 이상 떨어진 상태다. 드라마가 좋은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시장의 관심이 지속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드라마의 성공이 곧 제작사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투자자들이 잘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드라마업계의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제작사의 협상력이 약화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의 설명이다.
“요즘 드라마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괜찮은 작품을 만들자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자연스레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가 ‘갑’이 된다. 제작사들은 콘텐츠에 대한 권리와 수익 배분 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고, 흥행작을 내도 큰 수익을 얻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생태계 바꾼 넷플릭스
올해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째다. 2015년 서울 사무실을 낸 넷플릭스는 2019년 첫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을 공개하며 한국 콘텐츠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업계 관계자 얘기다.
“2019년 국내 드라마 제작비는 회당 3억~5억 원 수준이었다. 대작이라도 6억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데 ‘킹덤’ 제작비는 회당 20억 원이 넘었다. 넷플릭스가 그 돈을 다 대주고 제작비의 10% 이상을 제작사 이윤으로 책정해 지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작사들이 다 넷플릭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2021년 세계를 놀라게 한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후 넷플릭스발(發) 제작비 상승 곡선은 더욱 가팔라졌다. 유진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가 발표한 ‘제작비 폭등에 따른 국내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오징어 게임’ 시즌1 제작비는 회당 28억1000만 원이었다. 2023년 ‘경성크리처’(70억 원)에 이어 올해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의 경우 회당 167억 원 수준이 됐다. 이에 발맞춰 배우와 스태프 몸값 또한 껑충 뛰었다. 해외 유통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비(非)넷플릭스’ 드라마는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유 교수는 앞의 보고서에서 “현 드라마 제작비는 방송사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그 여파로 드라마 편성 슬롯이 대폭 축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발표한 ‘2024년도 방송시장 경쟁 상황 평가’ 통계를 봐도 변화가 감지된다(표 참조). 국내 방송사가 편성한 드라마 편수는 2019년 109편에서 지난해 77편으로 5년 사이 29% 줄었다. 반면 해당 기간 넷플릭스를 포함한 글로벌 OTT 오리지널 드라마 수는 3편에서 22편으로 7배 이상 늘었다. 방통위는 이 결과를 분석하며 “특정 사업자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썼다.
K-콘텐츠 경쟁력 유지·강화를 위한 해법
미디어산업 평론가인 조영신 박사(한국방송학회 ‘AI시대 영상산업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는 “한국 콘텐츠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세계시장을 겨냥한 대작뿐 아니라 제작비 100억~300억 원대 중소 규모 드라마도 계속 공급돼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 스토리를 발굴하고 새로운 연출가와 배우를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넷플릭스 독점체제’를 막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건 경쟁력을 갖춘 국내 OTT, 이른바 K-OTT 출범이다. 조 박사는 “힘 있는 로컬 OTT가 있으면 제작자들이 넷플릭스 투자를 받지 않아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수시장에서 유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것을 발판 삼아 해외 진출을 노려보겠다는 기대도 품을 것”이라며 “우리 콘텐츠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강력한 로컬 OTT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Credit Info 송화선 기자 제공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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