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 미술 분야 전문 기자들의 칼럼에서 읽을 만한 기사를 하나 골라 술술 읽어본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한국경제 성수영 기자, 헤럴드경제 이원율 기자의 기사 모음 등이다. 칼럼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들의 기사는 기사 같지 않은 느낌이 많다. 쭉 읽다 보면 미술도 와인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우선 맥락을 알아야 한다. 화가의 작품은 마지막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품어 온, 고통스러우면서도 그것을 탈피하거나 재해석하기 위한 예술가의 영혼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결과물이 포도즙과 효모의 작용에 의한 알코올 음료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내면에는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와인을 즐겁게 마시려면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요즘은 여러 유명 와인 유튜버들의 채널도 즐비하니, 그러한 채널을 참조하는 것도 좋다. 콘텐츠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이야기의 깊이에는 끝이 없다.
[왼쪽부터 돈나푸가타 밀레 에 우나 노떼, 비비 그라츠 꼴로레의 레이블, 출처: 각 와이너리 사이트]
와인을 생산한 가문의 이야기
예술 작품과 가장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아픈 고통이나 기억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예술 작품에 드러나게 된다. 와인 생산자들은 그들의 노력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와인에 담는다. 레이블에도 그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와이너리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그에 걸맞는 주제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시칠리아의 와인 명가 돈나푸가타(Donnafugata)의 레이블이나 토스카나의 비비 그라츠(Bibi Graetz) 같은 와인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생산자만의 이야기에는 특별함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알면 와인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
땅과 날씨 이야기
여행이란 무엇인가? 내가 사는 땅을 떠나 다른 땅에 가서 다른 풍광, 다른 경험을 하고 오는 것이다. 땅의 이야기란 곧 여행의 이야기다. 우리는 여행을 가기 전 현지 정보를 찾아본다. 옷차림도 현지 날씨에 맞춘다. 그런데 와인을 즐긴다면 여기에 더해 그곳의 지형, 토양, 좀 더 세밀한 기후 정보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스페인 프리오랏 지역은 바르셀로나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뜨거운 태양 때문에 남쪽 사면 보다 북쪽 사면이 오히려 더 좋은 밭으로 간주된다. 동남 사면과 서남 사면을 선호하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기후조건인 셈이다. 위도는 비슷하지만, 기후의 특징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뀐다. 땅과 날씨를 이해하면 와인을 훨씬 더 즐겁게 느낄 수 있다. 여행은 덤으로 따라다니는 것이다.
수입사의 이야기
숍이나 테이스팅 행사장에 가게 되면 수입사의 담당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브랜드 매니저나 영업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어느 와인이 왜 들어오게 됐는지 정보를 접하는 것이 좋다. 몇 병이나 들어왔으며, 할당을 받은 건 무엇인지, 어떤 와인이 수입사 대표의 취향인지, 애착이 가는 와인은 무엇인지 등 수입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어디에선가 수입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된다면 꼭 들어보도록 하자. 물론 특가 세일의 유혹이 따라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덤이다.
유통과 숍의 이야기
내가 와인 소비자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것이 숍의 주인들과 정보를 교환하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숍에 가서 어떤 와인에 대한 것만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어떤 와인은 재고가 안 나가고, 어떤 나라는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좋으며, 주인의 와인 선호도는 어떠한지, 어떤 와인을 왜 입고했는지, 애착이 많이 가서 팔고 싶지 않은 와인은 없는지 등 그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숍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숍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와인의 숨은 정보도 많이 얻게 된다. 단순히 유튜브에서 얻는 정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을 많이 알 수 있다.
간혹 주변에서 내게 유튜브 채널을 하나 열어보면 어떻겠냐, 권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유는 몇 가지인데, 글을 쓰기도 바쁘고, 온라인에서 내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내 목소리도 좋아하지 않고, 구독자 수 등 신경 쓸 요소가 늘어나기 때문에 기존의 일을 소홀히 할 것 같아서다. 나는 그저 지금처럼 시장 분석이나 하고, 묵묵히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Credit info 제공 와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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