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조선 시대 궁궐이 다섯 곳 있다. 어느 한 곳을 꼽기 어려울 만큼 모든 궁궐이 걷기에 참 좋다. 그중에서도 창덕궁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6월, 더운 계절의 문턱에 찾기 좋다. 이 시기에 창덕궁에 가면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한창 물들어가는 자연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세월을 품은 나무들의 안식처

by 덴 매거진
서울에는 조선 시대 궁궐이 다섯 곳 있다. 어느 한 곳을 꼽기 어려울 만큼 모든 궁궐이 걷기에 참 좋다. 그중에서도 창덕궁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6월, 더운 계절의 문턱에 찾기 좋다. 이 시기에 창덕궁에 가면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한창 물들어가는 자연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세월을 품은 나무들의 안식처
궐내각사 안 향나무
창덕궁에는 오랜 세월을 품은 귀한 나무가 여럿 산다. 금호문으로 들어가 왼편으로 바로 보이는 회화나무가 그중 하나다. 이 나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함께 그린 대형 궁중 회화 ‘동궐도’에도 등장한다. 그림이 완성된 시점이 1830년경이므로, 나이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령이 200년은 훌쩍 넘은 고목이다.
다섯 궁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도 창덕궁에 있다. 많은 관람객이 향하는 금천교 방향 대신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조선의 정부 청사’ 궐내각사가 나온다. 여러 부서의 신하가 모여 일하던 공간으로, 내각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그 한편에 수령 75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나무로, 미세하게 갈라진 나뭇결 사이로 아득한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Info. 창덕궁에서 종묘까지, 담장 따라 걷는 길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을 기준으로 동쪽에 자리해 함께 ‘동궐(東闕)’이라 불렸다. 두 궁은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어 함양문을 통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또 주말과 공휴일에는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위치한 율곡로 출입문을 개방해 종묘까지 이어 걷기 좋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궁궐
창덕궁은 자연을 향한 존중이 깃든 궁궐이다. 이런 측면에서 창덕궁은 경복궁과 비교된다. 경복궁은 북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땅에 주요 건물을 직선 방향으로 배치해 효율성을 강조했다. 이와 달리 창덕궁의 전체 구조는 동북 방향으로 뻗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높낮이가 다양한 여러 언덕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창덕궁 안에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대표적으로 인정전 월대 위다. 월대 중간쯤 적당한 지점에 서서 인정문 방향을 바라보면 담장 너머로 언덕이 보인다. 당시 건축 기술로 충분히 없앨 수 있는 언덕이지만 그대로 두었다. 인정전도 언덕 하나를 등에 둔 채 서 있다. 정문인 돈화문에서 인정전을 거쳐 후원에 이르기까지 창덕궁 전체가 여러 언덕 사이를 절묘하게 피하며 들어선 셈이다. 창덕궁은 가장 많은 임금이 가장 오랜 시간 살았던 궁궐로, 조선 임금들이 유독 창덕궁에서 오래 산 이유를 알 법하다.
비 오는 풍경마저 선물이 되는 곳
초여름 날 창덕궁에서 비를 만난다면, 성정각(誠正閣)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성정각 주변은 세자가 생활하던 ‘동궁(東宮)’으로, 그 안에는 ‘봄소식을 알린다’라는 뜻의 보춘정(報春亭)이 자리한다. 높게 지어 올린 보춘정 아래는 비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 가기 좋은 공간이다.
성정각 동쪽 담장 안쪽에는 살구나무가 서 있다. 그 앞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레 땅바닥에 멈춘다. 기와지붕을 타고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똑똑’ 하고 하염없이 이어지는 빗소리는 주변의 거친 소음을 갑자기 사라지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웅덩이 수면에 원을 그리며 퍼지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자면, 순간 이 너른 궁궐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듯한 황홀한 착각에 빠진다.
고요한 비밀 정원, 낙선재 언덕
창덕궁 동쪽 끝자리에는 낙선재가 자리한다. ‘장락문(長樂門)’이라고 쓰인 솟을대문을 지나면 한눈에 기품이 느껴지는 한옥 한 채가 보인다. 헌종(24대) 임금이 책을 읽기 위해 지은 집이다. 낙선재 최고 풍경은 건물 뒤로 보이는 언덕이다. 이곳 가장 높은 곳에 ‘시원한 곳에 오른다’라는 뜻을 지닌 ‘상량정(上凉亭)’이라는 정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름처럼 정자 앞에 서면 초여름 더위를 씻겨줄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멀리 우뚝 솟은 YTN서울타워도 손에 잡힐 듯하다. 낙선재 언덕은 평소 비공개 장소라 특별개방 프로그램 때만 올라가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낙선재 주변을 거닐며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궁궐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낙선재 입구 장락문의 뜻은 ‘오래 즐거움을 누린다’이다. 창덕궁 어느 곳에서든 잠깐 멈춰 서서 오래 지켜보면 선물 같은 고요한 풍경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6월의 초여름은 분명 짧을 테지만, 창덕궁 산책의 즐거움만은 오래 갈 거라 확신한다.
Credit Info
이시우(문화유산교육전문가)
제공 덴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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