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3.7배…전국 땅 꺼짐 사고 늘어나는데 현행법상 붕괴는 ‘건물’만, 사망사고에도 ‘사회재난’ 배제 법·제도 개선 및 예산·인력 등 대응체계 마련 시급
서울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사고 현장 모습. 뉴시스
갑자기 땅이 꺼지며 도로를 달리던 차량을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이 최근 일상에서, 그것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도로 한복판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땅 꺼짐(싱크홀)’ 사고로 SUV 탑승자와 행인 두 명이 다치고, 3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4월에는 광명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이 무너지면서 바로 위 도로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공사 노동자 1명이 다치고 1명이 숨졌다. 같은 달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 도로 땅 꺼짐으로 출근길에 2개 차로가 통제됐으며, 부산 사상구에서는 이틀 연속 깊이 4~5m 규모의 땅 꺼짐이 발생했다.
땅 꺼짐은 자연적 원인으로 발생할 때도 있지만 대도시에서는 대부분 노후 하수관 파손과 부실 공사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서울과 수도권, 전국의 도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땅 꺼짐 사고로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까지 겹친 사고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다.
이러한 불안을 심화하는 데는 사회안전망 부재도 한몫하고 있다. 땅 꺼짐 사고로 발생한 피해가 ‘사회재난’에서 배제돼 책임이나 보상 관련 법적 공백이 있는 데다, 정부의 ‘지하안전관리계획’에서도 미비점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도로 꺼졌는데 “재난 아닌 사고”라니…
지난 4월 서울 강동구 명일동 도로에서 일어난 땅 꺼짐 사고 피해는 현행법상 ‘사회적 재난’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땅 꺼짐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상 재난이 아닌 ‘일반 사고’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붕괴’는 건축물의 무너짐만으로 한정하고 있다. 땅 꺼짐 사고는 수년 전부터 심화하고 있지만 이를 재난이나 재해로 규정하는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도로 등이 꺼지는 사고가 정부의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서울시는 앞서 명일동 땅 꺼짐 사고 당일 작성한 보고서에서 ‘사회재난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사회적 재난 피해자라면 서울시가 가입한 ‘시민안전보험’을 통해 최대 2000만 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되지만, 사회적 재난이 아닐 경우 이런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여론이 악화하자 서울시는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인명 피해’라는 대통령령의 사회적 재난 규정을 확대 적용해 뒤늦게 조치를 취한 상태다.
서울의 땅 꺼짐 신고는 2022년 67건에서 2024년 251건으로 2년 만에 3.7배 늘었다. 서울에서만 한 달에 평균 20건이 넘는 땅 꺼짐 사고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법적 공백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책임 소재도 따지기 어렵다. 지자체를 비롯해 정부, 사업자 등 관리 주체의 사고 예방 책임을 높인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도로 땅 꺼짐은 제외돼 있어서다. 중대 시민 재해 발생 공간인 공중이용시설에 ‘도로’가 명시돼 있지 않은 탓이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4월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즉각 공개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하안전계획’ 세웠다지만…인력도 장비도 부족
법의 공백뿐 아니라 정부의 안전관리 체계와 지자체별 점검 상황도 우려되는 점이다. 정부는 2018년 지하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10m 이상 굴착하는 지하 개발 공사는 의무적으로 ‘지하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또 도로 노후 지역 등에서는 지자체의 정기적인 지반 공동 조사도 의무화했다.
그러나 인력, 장비 부족 등으로 실제 점검까지는 평균 7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부분 자체 점검이 어려워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고 예방 책임을 지고 있는 국토안전관리원조차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반 탐사 예산 증액 협의 △지반 탐사 장비 및 인력 확충 △중요 땅 꺼짐 사고 초기 현장 조사 후 지자체 통보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안전관리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올해 배정된 지반 탐사 예산 14억6000만 원 이외에 국회와 30억 원 추가 증액을 협의했으나 무산됐다. 지난해 국회 예산 심의 때 정부안 외 전체 예산이 감액됐기 때문이다.
지반 탐사 장비 확충도 완료되지 않았다. 본래 GPR(지표투과레이더·전자기파를 방출해 땅속 공동 같은 땅 꺼짐 위험 요소를 탐지하는 장비) 협소 지역용 6대, 도로용 5대 등 총 11대의 탐사 장비를 운용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도로용은 아직 3대뿐이다. 현재 탐사 장비만으로는 탐사 실효성이 떨어져 고성능 장비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도 문제다. 지난 3월 말 기준 국토안전관리원 땅 꺼짐 담당 전문 인력은 총 12명이다. 이 인원이 전국을 대상으로 점검을 진행해야 한다.
국토안전관리원이 발표한 ‘2024 지하안전 통계연보’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에서 실시된 GPR 조사는 총 5009건이다. 전국 행정동 수가 4643개인 점을 고려하면 각 동에 5년에 한 번꼴로 조사가 이뤄진 셈이다. 울산, 대전, 광주, 전북 등 주요 지자체에서는 이 기간 GPR 공동 조사 건수가 100건 내외에 그쳤다.
GPR 조사 의무화가 5년에 한 번이라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조사가 주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특정 시기에 편중돼 문제를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연 1회 이상 ‘육안 조사’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확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2차 국가 지하안전관리 기본계획(2025~2029)’을 수립했다. 향후 5년간 총 2만km 구간을 조사 대상으로 설정하고, GPR 조사도 5년에 한 번에서 연 2회로 확대하기로 했다. 국토안전관리원의 지자체 지원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를 실현할 현실적인 예산과 인력 확충 없이는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전문가는 “전문 인력과 장비를 확보하고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어 과감한 재정 투입과 추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지자체 ‘지하안전계획’ 복붙?
정부와 함께 사고 예방과 관리 책임이 있는 지자체의 부실 행정과 인력 부족도 문제다.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시·도·군·구 등 지자체는 매년 ‘지하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지자체별 특이 사항이나 특화 전략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서울시 등에서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복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관내 지하 시설물이나 관리 기록 목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서울시 자치구 내 전담 인원도 대부분 1명이어서 자체적으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국토부는 “주체별 실행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위 계획을 답습한 사례가 확인된다”고 보고, 뒤늦게 ‘지하안전관리제도 개선 방안 마련 연구’ 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정부, 지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공사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원자재·인건비가 급등하면서 건설 현장에서 비용 절감이 일상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저렴한 원자재와 전문 인력 부족, 이에 따른 부실시공 등이 겹치면서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코로나 이후 예견됐던 위험”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도심 터널이나 지하철 공사 현장은 복잡한 지질과 노후 인프라가 얽혀 있다. 우리나라의 노후 하수관 교체 주기는 50년에 달한다. 하지만 지반 조사는 200~500m마다 1회에 그치고, 주민 반발로 조사 자체가 생략되는 일도 있다.
설계상 포함된 지반 보강·차수 공법(물이 땅속으로 새지 않도록 막는 건설 공법) 예산 절감을 이유로 시공 단계에서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감리 역시 형식적이다. 2024년 기준 전국 지하 안전 점검률은 68%에 불과하다. 50m 이상 심층 개발 지역의 40%는 아예 점검이 실시되지도 않았다.
해외는 민관 함께 관리… 우리도 예방 중심 대책 마련해야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와 달리 예방 중심의 안전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하 기반 시설 보호 조치로 지하 굴착공사 중 타사 가스 배관, 상·하수도관 등의 매설 상황을 확인토록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지하 시설물을 시각화하는 UIM플랫폼을 개발했으며, 싱크홀 관련 보험상품 가입을 의무화한 주도 있다. 싱크홀 징후가 있으면 보험사에서 이를 확인토록 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민관이 함께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ONE-CALL 시스템’을 통해 모든 지하 시설물 정보를 통합 관리한다. 공사 전에 한 번의 전화만으로도 관련 기관이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를 파견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항공기, 인공위성에서 수집된 레이더 자료를 통해 싱크홀을 예측하는 기술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은 국가지하자산등록제(NUAR)를 통해 지하 파이프나 케이블 등 매립된 인프라의 설치, 유지, 운영 및 수리를 혁신할 수 있는 디지털 지도를 구축하고 있다.
독일은 디지털트윈 기술로 지하 시설물의 3D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주기적으로 안전 등급을 부여해 관리한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지하수 과잉 양수를 엄격히 규제하고, 노후 하수관을 연차적으로 교체하며, 지반 조사를 기초-세부-실행 3단계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2000년부터는 ‘대심도 지하의 공공적 사용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제정 후 시행하고 있다. 매년 환경성에서 지반침하 지역 개황 보고서를 발표하고, GPR 데이터를 이미지화해 땅 꺼짐 가능성 등을 식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지하안전영향평가를 소규모 공사까지 확대하고, 지자체의 계획 이행을 정부가 직접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미국의 ONE-CALL 시스템처럼 119, 지자체, 시설 관리기관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마련도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전을 지키는 것은 법과 제도만이 아니라 실행에서 비롯된다. 땅 꺼짐 안전사고 예방과 대응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법적 사각지대와 허술한 관리 시스템을 하루빨리 개선하고 예방 중심의 관리 체계 마련과 실현이 요구된다.
Credit Info 김미리내 비즈워치 기자 제공 신동아
※ 서비스 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해당 제공처에 있습니다. 웨더뉴스에는 기사를 수정 또는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므로 불편하시더라도 기사를 제공한 곳에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