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해진 도시와 달리 횡성숲체원에서는 이제 막 봄이 찾아들고 있었다. 낙엽 사이로 얼레지꽃, 꿩의바람, 너도바람꽃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에도 봄기운이 묻어났다. 숲속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원주시에서 강원도 국립횡성숲체원을 찾은 김준형 씨 가족. 도시의 번잡함을 잠시 잊은 채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칡 가지로 비눗방울도 불어 보고 속새로 풀피리도 만들어보며 자연에 동화되는 시간을 가졌다.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맑은 공기와 소소한 순간들로 꽉 채운 1박 2일의 여정. 자연이 그들의 일상에 작은 쉼표 하나를 선물해준 듯하다.
DAY 1
10:30~11:30 봄의 감성까지 득템하는 무장애 데크길 행복과 건강 그리고 활력까지 채우다
원주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국립횡성숲체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거리지만 바쁜 일상에 밀려 아들 정우가 다섯 살이 되도록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드디어 멋진 기회를 얻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이 내렸고 전날까지는 비바람이 불어서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오늘은 세 식구의 방문을 환영하듯 화창하고 따뜻한 봄 햇살이 반겨준다.
세 식구는 방문자센터 앞 안내판을 들여다보며 다양한 테마의 트레킹 코스 중 나무데크 길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를 선택했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국립횡성숲체원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한다. 데크길 초입의 작은 연못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속의 물고기와 도롱뇽 알을 구경하느라 한눈이 팔린 정우의 손을 잡고 데크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정우가 데크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무를 양팔로 껴안더니 ‘나무야 쑥쑥 자라’라고 혼잣말을 했다. 엄마 아빠의 웃음꽃이 봄기운을 더했다.
200m쯤 걸었을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오르자 훈훈한 봄바람이 살랑거리듯 불었다. 전망대에는 ‘치유의 종’이 걸려 있었는데 그 옆에는 “한 번 치면 활력을 주고, 두 번 치면 행복을 주고, 세 번을 치면 건강을 둔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정우야, 우리는 몇 번 칠까”라고 묻자 망설임 없이 “아빠는 세 번 치고, 엄마는 두 번 치고, 나는 한 번만 칠게”란다.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명답이다. 산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종을 울리는 세 식구의 모습이 봄 햇살 아래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11:30~13:00 : 점심 식사 식사 준비의 부담은 덜고 자연의 맛으로 꽉 찬 오찬
전망대까지 다녀오느라 출출해진 세 식구가 간 곳은 숲체원의 식당.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1식 5찬, 생선구이와 버섯이 듬뿍 든 간장 떡볶이가 먹음직스럽고 상큼한 무 초나물은 입맛을 돋운다. 아빠는 식판을 한 번 더 채워오며 “벌써부터 저녁 메뉴가 기대되네”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횡성숲체원에서는 취사가 금지되어 있다. 대신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제공한다.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없애고 다 함께 숲을 온전히 느끼며 힐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문객들 사이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엄마도 오랜만에 식사 준비의 부담에서 벗어나 세 식구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고 따뜻한 식사 시간을 보냈다.
13:00~ 15:30 : 체크인 따뜻한 차 한잔을 즐기며 오붓한 데이트를 즐길까 했는데…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정우도 열심히 걸어 다닌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보인다. 모처럼 부부가 숙소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려던 찰나, 정우가 졸리는 눈을 비비면서도 엄마 아빠 사이를 파고들더니 꼭 붙어 앉았다.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한 방향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15:30~17:00 : 숲해설 오감체험 프로그램 수줍은 듯 숨어 있는 봄의 향기와 소리를 만나다
오후에는 숲해설사와 함께하는 오감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평소라면 20~30명의 방문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이날은 다른 신청자가 없어 오롯이 세 식구만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되었다. 푹신푹신 코르크가 깔린 길을 따라 걸으며 숲해설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길가에는 초록색 화백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었다. 숲해설사가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건냈다.
“아직 봄이 안 온 것 같아 서운하지요. 그런데 이 숲속에 수백 마리의 나비가 숨어 있어요.”라며 루페(확대경)를 하나씩 나눠주며 화백나무 잎의 뒷면을 들여다보라고 권했다.
“우와, 나비처럼 보여요!” 정우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숲해설사는 화백나무 잎 뒷면에 있는 나비 모양 무늬가 편백이나 측백과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제서야 낙엽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얼레지, 꿩의바람꽃, 너도바람꽃 같은 봄꽃들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속에는 알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계곡물을 건너 속새와 관중 군락을 지나 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흥미로운 체험을 이어갔다.
속새로 풀비리를 만들어 불자 ‘삐이!’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칠 줅기에 비눗물을 묻혀 불어 보니 비눗방울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봄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정우도 엄마, 아빠도 얼굴이 빨개지도록 후후 불며 숲속의 봄을 만끽했다.
“정우야 개울물은 어떻게 흐르지?” 엄마가 다정히 물으니까 정우는 “졸졸졸 흐르지”라고 노래하듯 대답했다. 정우의 말대로 졸졸졸 소리나는 곳을 따라가니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친김에 나뭇잎 배도 만들어보기로 했다. 숲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조릿대 잎을 접어서 멋진 나뭇잎 배가 완성했고 맑은 계곡물 위에 띄웠다. 나뭇잎 배는 물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려 갔다. “잘 가!” 정우가 손을 흔들며 나뭇잎 배를 떠나보내는 모습에 또 한번 봄꽃 같은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DAY 2
07:00 : 숲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 맑은 새벽 공기 속에서 깨어난 식구들 에너지 충전!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세 식구는 창문 너무로 스며드는 햇살을 맞으며 저마다 기지개를 켰다. 전날 온종일 숲길을 걸었는데도 몸은 오히려 한결 가벼워졌다. 이게 바로 숲의 마법이자 자연의 힘인가 보다.
눈을 뜨자마자 정우는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아빠가 동화책 대신 정우를 번쩍 들어 올리며 ‘로켓 발사!’를 외치자 정우가 까르르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나는 흉내를 낸다.
오늘은 또 어떤 자연의 선물이 세 식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으로 시작하는 아침, 마치 동화책 다음 장을 넘기듯 숲속에서 펼쳐지는 세 식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며칠 전에 가족과 함께 일주일간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차라리 국립횡성숲체원으로 왔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보낸 하루가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겼거든요. 어딜 가든 늘 머릿속엔 업무 생각이 떠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일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어요. 15년 전쯤, 아이들 캠프 지원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곳을 왔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처음엔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음식 맛이 조금 걱정됐는데 완전히 기우였습니다. 제가 지금껏 이용해 본 구내식당 중 단연 최고였어요. 식판을 두 번이나 다시 채워 먹었을 정도로 제 입에 잘 맞았습니다. 숙소 침구류도 깔끔하고 포근해서 오랜만에 꿀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마음이 지칠 때마다 이곳이 떠오를 것 같아요. 5월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시 오고 싶어요. 아빠 김준형 씨(41세, 연구원)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장난감이나 휴대폰 영상처럼 강한 자극 속에서 자라다 보니 숲이 전해주는 잔잔한 즐거움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정우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무척 좋아하는 아이라 숲속에서는 혹시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다행히 솔방울과 도토리를 주워 장난감 삼아 놀면서 점점 자연과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더라고요. 자연 속에서 얻은 것들로 풀피리도 불어 보고 비눗방울도 날리며 다양한 활동을 즐겼어요. 특히 나뭇잎 배를 만들어 개울물에 띄울 때는 정말 신나하더라고요. 이번 여행은 정우에게도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참, 식사 준비에 쫓기지 않고 가족과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큰 행복이었어요. 엄마 장서윤 씨(38세, 주부)
청태산 해발 850m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횡성숲체원은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국가 제1호 산림교육센터입니다. 도시의 봄은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리지요. 국립횡성숲체원은 봄을 천천히 즐기기에 그만인 곳입니다. 특히 5월에는 야생화들의 천국으로 변모합니다. 짧은 봄이 아쉬웠다면 숲체원에서 한층 더 완연해진 봄의 정취를 여유롭게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국립횡성숲체원 이수성 원장
Credit Info 제공 에코힐링 매거진
※ 서비스 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해당 제공처에 있습니다. 웨더뉴스에는 기사를 수정 또는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므로 불편하시더라도 기사를 제공한 곳에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