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2450m 고지 양옆으로 나 있는 높이 20m 설벽길로 유명한 무로도. GETTYIMAGES
형광등 불빛 아래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길에 밀려드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서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 찰나에 머릿속을 뒤흔드는 건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다. 조금 더 큰 세상, 조금 더 깊은 자연 속에서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먼저 도착한 곳은 ‘일본의 알프스’ 알펜루트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막힌 숨이 트이는 길 알펜루트는 일본인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는 명소다. 특히 ‘눈의 회랑’으로 불리는 무로도(室堂)의 설벽 구간은 CNN과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도 소개되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한국에서 알펜루트로 가려면 두 거점 도시를 기억하면 된다. 도야마와 마쓰모토. 도야마로 향하는 직항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며 2시간 30분 정도면 닿는다. 마쓰모토로 가려면 일본 나리타나 하네다국제공항에서 다시 신칸센 또는 특급열차로 갈아타야 하니, 초행자는 도야마를 선택하는 것이 수월하다. 도야마역에 도착하면 도야마 지방철도를 타고 다테야마역까지 간다. 그곳이 바로 알펜루트 시작점이다.
알펜루트는 다테야마에서 오기자와까지 이어지는 약 90㎞ 산악 루트다. 케이블카, 고원버스, 트롤리버스, 로프웨이, 산악열차 등 6가지 교통수단을 갈아타며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고행이 아닌, 자연이 선사하는 매혹적인 풍경 속으로 초대처럼 느껴진다. 알펜루트는 자유여행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고 배차 간격에 맞춰 이동하기가 쉽지 않아 여행사 패키지 상품도 고려할 만하다. 특히 설벽이 장관을 이루는 4월 말~6월 성수기 시즌과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가을 시즌에는 알펜루트 전문 패키지 상품이 다양하다.
알펜루트의 첫 시작은 무로도 구간이다. 해발 2450m 고지 양옆으로 나 있는 높이 20m 거대한 설벽길은 꼭 걸어봐야 한다. 무로도에 가려면 먼저 다테야마 케이블카를 타고 비조다이라까지 이동한 뒤 고원버스를 타고 50분을 더 달려야 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숲과 절벽, 간간이 내리는 눈발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자연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무로도에 도착한다.
웅장한 설경 앞에 서는 순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압도감이 밀려온다. 바람도 말이 없고, 풍경은 숨을 삼키게 만든다. 하얀 설벽길을 걷다 보면 자연의 거대한 품속에서 새삼 ‘나는 그저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이 가슴 깊숙이 와 닿는다. 무로도에서 다이칸보(2316m)까지는 트롤리버스로 10분가량 이동하며, 두 지점 간 거리는 약 3.7㎞다.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이 구간은 마치 지구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보는 여행이 아닌, 마음 채우는 여행
다이칸보에서 구로베다히라(1828m)를 잇는 로프웨이는 거대한 협곡 위를 공중에 떠서 건너는 구간이다. 발아래로는 구름이 흐르고, 수풀 사이로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반짝인다. 손잡이를 잡은 손끝에 힘이 들어갈 만큼 긴장되지만, 동시에 마음은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그 고요 속에 바람 소리만이 또렷하다. 구로베다히라에서 구로베 호수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한다. 짧은 구간이지만 숲과 바위 틈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단순한 이동 이상의 의미를 준다.
6가지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도착하는 마지막 여행지 구로베댐. 재이 제공
마지막으로 구로베 호수에서 구로베댐까지는 다시 트롤리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약 6.1㎞ 거리로 16분가량 소요된다. 알펜루트를 이동하는 교통수단은 모두 고산지대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동 과정 자체가 감동을 준다. 구로베댐은 인간이 자연과 어우러지게 만든, 그야말로 경이로운 구조물이다. 186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마치 자연의 심장박동처럼 힘차게 흐르고, 그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 깊은 곳까지 울림을 남긴다. 이쯤 되면 알 수 있다. 알펜루트는 풍경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풍경 속을 지나며 마음을 다시 채우는 길이라는 것을.
알펜루트 종착지 오마치 마을 근처에는 온천들이 모여 있다. 하루를 꽉 채워 이동한 뒤에는 온몸이 지쳐온다. 이럴 때는 료칸만 한 곳이 없다.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몸을 담그는 순간 모든 피로가 사라지고 마음도 함께 녹아내리는 것 같다.
저녁식사로는 료칸에서 계절에 맞춰 준비한 가이세키 요리가 기다린다. 다테야마에서 채취한 산채 나물, 제철 생선구이, 따끈한 두부전골과 신선한 회, 그리고 은은한 향이 나는 일본 소주 한 잔이 나오는데 한 접시 한 접시마다 자연의 손맛이 담겨 있다.
여행의 마지막 밤, 따뜻한 이부자리 안에 몸을 말아 넣고 창밖 설산을 바라보는 순간,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는 여전히 바쁘고 일상은 언제나처럼 반복될 테지만, 가슴이 트이는 여행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것이 바로 알펜루트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Credit Info 재이 여행작가 제공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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