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파뉴의 땅속에서부터 양조장까지 둘러보며, 샴페인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배우고 포용한 끝에 탄생한 예술이란 걸 알게 됐다. 원래 샹파뉴는 기후가 좋은 산지가 아니지만 샹파뉴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창의적 해법으로 샴페인을 탄생시켰고, 전 세계가 사랑하는 축배의 상징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운 기후 변화 앞에서 이들은 또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전통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멈추지 않는 샴페인의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by 와인21
샹파뉴의 땅속에서부터 양조장까지 둘러보며, 샴페인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배우고 포용한 끝에 탄생한 예술이란 걸 알게 됐다. 원래 샹파뉴는 기후가 좋은 산지가 아니지만 샹파뉴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창의적 해법으로 샴페인을 탄생시켰고, 전 세계가 사랑하는 축배의 상징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운 기후 변화 앞에서 이들은 또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전통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멈추지 않는 샴페인의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기후 변화, 샹파뉴의 현상황
샹파뉴는 대륙성과 해양성 기후 영향을 모두 받는다. 북위 49도에 있는 이 지역은 서늘한 기후인데, 흐린 날과 잦은 비, 짧은 여름,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더해져 매년 안정적인 수확량과 일정한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샹파뉴 사람들은 이런 기후 조건을 위협이 아닌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농사가 잘 된 해의 와인을 리저브 와인으로 남겨두었다가, 수확이 부진한 해에 블렌딩하여 품질을 유지하는 샴페인만의 독특한 양조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샴페인은 '블렌딩의 미학'이라 불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포도가 충분히 익지 않아 고민이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그 부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러나 상황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샹파뉴의 기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평균 온도는 30년 전보다 1.1도 이상 상승했다. 그 결과 알코올 도수는 약 0.7% 증가하고, 산도는 1.3% 감소했다. 포도의 산도와 당도 균형, 그리고 빈티지 특성 보존을 위해 훨씬 노련한 관리가 필요해졌다. 또한 포도가 빨리 익으면서 말산(malic acid) 함량은 줄고, 상대적으로 주석산(tartaric acid)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샴페인의 섬세하고 선명한 산미를 유지하는 데 큰 도전이 된다.
가장 극명한 변화는 수확 시기다. 1970년대에는 보통 9월 말~10월 초에 수확했지만 지금은 9월 초, 때에 따라 8월 말에 수확하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18일 이상 앞당겨졌다. 게다가 수확은 반드시 손으로 해야 하기에 수확 시기의 단축은 노동력, 인력 배치, 수확 품질 관리 등 여러 측면에서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수확 적기를 의미하는 '윈도우' 자체가 짧아진 것도 현장의 큰 걱정거리다.
그렇다면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샴페인 하우스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루이 로드레, 자연과 함께 요리하는 주방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는 샹파뉴에서 가장 선명하고 앞선 방식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내일을 준비하는 샴페인'을 꿈꾸며, 2000년대 초부터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왔다. 현재 총 280헥타르에 이르는 자가 포도밭 중 상당수가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이 중 대부분은 바이오다이내믹 방식으로 관리한다. 여름철 우박 같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포도밭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루이 로드레 리셉션]
이들의 철학은 '생명력 있는 토양이야말로 기후 변화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데 있다. 와인의 복합성은 포도밭에 더 많은 생물이 살아야 확보된다고 믿는다. 포도나무가 폭염에 시달리면 차를 우려서 뿌려주고, 어린 포도나무는 예전처럼 말로 쟁기질하며 키우고, 경작하지 않는 밭에서는 꿀벌을 키워 생태계를 돌본다.
루이 로드레의 셰프 드 카브, 장 밥티스트 르까이용(Jean-Baptiste Lécaillon)은 포도나무가 기후 변화에 반응하는 속도보다 실제 기후 변화가 더 빠르다고 말한다. 그래서 과거처럼 특정 클론 하나만 선택해 집중하는 대신, 현재는 피노 누아만 30종 이상 섞어 심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한다. 이는 클론마다 익는 시기가 3~4일씩 다르고, 병충해에 대한 내성도 다르기에 '수집적인 적응'을 위한 전략이다.
포도밭은 420개 구획으로 나누고, 양조는 총 450개의 탱크에서 구획별로 이뤄진다. 수확과 발효 후 겨울에 블라인드 시음을 통해 각 구획을 맞춰본다. 보통 90%는 정확히 매칭되지만 나머지 10%는 품질이 기대보다 높거나 낮아서 혼란을 주기도 한다. 로드레는 이 10% 결과에 대해 포도밭 관리부터 양조까지 단계별로 복기하며 원인을 찾는다. 마치 셰프가 요리의 실패를 되짚듯 말이다.
[루이 로드레 셰프 드 카브, 장 밥티스테 르까이용]
“와인은 음식 같아서 마술은 없어요. 매일 맛보고 노력할 뿐이죠.” 셰프 드 카브의 말처럼 로드레는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 샴페인은 모든 와인에 동일한 기압을 적용하지만, 로드레는 기압을 빈티지와 스타일에 따라 조정한다. 기포가 와인의 구조를 살리도록 돕되, 결코 앞서 나가지 않게 설계하는 것이다.
또한 로드레는 최근의 기후 변화로 포도가 매년 점점 더 잘 익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기본급 샴페인 이름도 '콜렉시옹(Collection)'으로 바꾸고 와인에 각 빈티지의 개성을 더 뚜렷이 담기 시작했다. 샴페인이 점점 '빈티지화'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특정 해의 성격이 너무 강해질 경우 하우스 고유의 스타일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를 보완하고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한 품질의 변동성을 완충하게 위해 로드레는 '퍼페추알 리저브'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루이 로드레 퍼페추알 리저브 탱크]
“이건 나의 스파이스, 나의 시그니처예요.” 장 밥티스트 르까이용은 퍼페추알 리저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로드레는 현재 총 15개의 퍼페추알 탱크(각 1,000헥토리터 규모)를 운영 중이며 곧 2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 탱크에는 여러 해의 좋은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반반 섞여 저장되고, 매년 새 와인을 더해 블렌딩의 깊이를 키워간다. 이 퍼페추알은 빈티지 효과가 줄면서 중성화되고, 숙성되는 동시에 젊음의 에너지를 품게 된다. 르까이용은 이 퍼페추알이 몽라셰처럼 미네랄 특성이 두드러지길 바란다. 그의 퍼페추알은 굴껍데기 풍미를 지닌다.기후 변화는 해마다 샴페인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로드레는 이를 위협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며, 그 변화 위에서 요리하듯 섬세하게 균형을 맞춰간다. 샴페인이란 단지 버블이 있는 와인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협업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다시금 느끼게 된다.
[새로 짓고 있는 앙리 지로 셀러 도어]
앙리 지로, 오크에서 사암으로 시작된 변주
앙리 지로(Henri Giraud)는 1625년부터 샹파뉴 지역 아이(Aÿ)에 뿌리내린 가족 경영 하우스로, 올해로 400주년을 맞았다. 12대에 걸쳐 샴페인을 빚어온 이 하우스는 현재 360도 전망이 가능한 새로운 셀러도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아이 지역의 그랑 크뤼 포도만을 사용하는 전통을 지키며, 자가 포도밭의 포도로만 와인을 만드는 소규모 고급 생산자다. 철저한 품질 관리와 과감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앙리 지로는 오래전부터 오크 숙성의 부활을 주도하며 '오크에 미친 자'로 불린다.
샴페인 세계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이 일반화되던 시절, 클로드 지로는 '샴페인은 오크를 통해 테루아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순히 오크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르곤 숲의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을 지역 장인과 함께 제작했다. 아르곤 숲은 1차 세계대전 격전지로도 유명한데, 그는 이 숲의 세월과 토양이 와인에 녹아든다고 믿었다.
2013년에는 이 숲을 복원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 'Forever and Ever Argonne 캠페인'을 시작했다. 프랑스 국립산림청과 협력해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아르곤 퀴베 한 병이 팔릴 때마다 2년생 참나무 한 그루를 심고 5년간의 유지 관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5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앙리 지로는 자사의 샴페인을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에 비유한다. 와인은 다이아몬드, 아르곤 숲은 이를 감싸는 링이다. 그만큼 오크를 테루아의 연장선으로 여기며, 숲도 여러 구획으로 나눠 참나무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샤트리스(Châtrices), 라 콩트롤레리(La Contrôlerie), 부아 데 오-바티(Bois des Hauts-Bâtis) 등 최소 10개의 독특한 테루아가 주는 특성을 식별해 오크통에 적용한다.
[샤트리스 구획 오크와 높이에 따른 오크 차이까지고려하는 앙리 지로]
그뿐 아니라 오크통의 나무 등걸 아래부터 위로 차례대로 8단계로 나눠 부위별 특성을 구분하고, 굴뚝식 간접 화로로 1~2시간에 걸쳐 구워낸 오크를 사용한다. 직접 굽는 일반적인 방식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열이 고르게 스며들어 더 섬세하고 정제된 풍미를 얻을 수 있다.
[양 옆이 사암으로 마감된 앙리 지로 오크통]
이처럼 오크조차 하나의 양조 도구가 아닌, 와인의 '공명'을 만들어내는 요소로 다루는 앙리 지로는 최근 실험의 무대를 '사암(grès)'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암은 미세한 산소 투과성을 유지하면서도 오크처럼 향을 더하지 않기에, 포도 자체의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데 적합하다.
[앙리 지로 뱅 클레어]
셰프 드 카브 세바스티안은 사암을 '가장 중립적인 소재'라 말하며, 동일한 포도로 만든 오크 숙성 와인과 사암-오크 혼합통 숙성 와인을 비교 시음할 수 있게 해줬다. 샤트리스 오크를 쓴 와인은 산도가 높고 까끌까끌한 질감이 또렷했으며, 사암 와인은 더 부드럽고 정제된 질감에 짠내와 백악질 특성이 더 섬세하게 드러났다. 오크가 구조를 만든다면, 사암은 미세한 울림을 남겼다.
[앙리 지로 셰프 드 카브, 세바스티안 르 골브]
이 실험은 단순한 기술적 시도가 아니라, 기후 변화 속에서도 포도 본연의 순수한 표현력을 끌어내려는 앙리 지로의 철학이다. 전통을 끝까지 밀어붙인 이만이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듯, 앙리 지로는 지금 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포도가 이토록 잘 익는 시대에 과연 샴페인에 여전히 설탕의 힘이 필요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브루노 파이야르(Bruno Paillard)를 찾았다.
[브루노 파이야르 로비 공간]
브루노 파이야르, 투명함과 절제의 미학브루노 파이야르는 1981년, 단 27세의 나이에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던 재규어 자동차를 팔아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다. 무려 100년 만에 새롭게 생긴 샴페인 하우스였다. 그는 17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브로커 집안 출신으로, 6년간 샴페인 브로커로 일하다 더 순수하고 우아한 샴페인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독립했다. 단 세 명의 직원과 하나의 압착기로 시작한 그의 샴페인 하우스는 현재 19개 마을, 89개 구획에 걸친 25헥타르 포도밭(절반이 그랑 크뤼)을 소유하고 있으며, 직접 관리한다. 연간 약 50만 병을 생산해 75% 이상 수출하며 빠르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브루노 파이야르의 핵심 철학은 '투명함'과 '절제'에 있다. 모든 포도밭은 토양 건강과 미생물 다양성에 중점을 둔 유기농법 및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며 최고 등급의 환경 인증(HVE)을 받았다. 오직 1차 압착한 퀴베만 사용하며, 총 96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400개의 오크 배럴로 미세 구획별 발효를 진행한다. 젖산 전환은 자연스레 유도되고, 블렌딩 전까지 6개월간 총 500개 배럴과 110개 뱅 클레어 샘플을 시음한 뒤 최종 조합을 결정한다. 멀티 빈티지 와인은 퍼페추알 리저브 시스템을 통해 하우스 스타일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브루노 파이야르 양조장 지로팔레트]
브루노 파이야르는 1980년대 초부터 샴페인 병에 데고르주망(Disgorgement) 날짜를 표기한 선구자였다. 이는 소비자에게 '언제 병에서 효모 찌꺼기를 제거했는가'를 알려줌으로써 적절한 음용 시기 판단에 도움을 주며, 샴페인 생산에서 투명함의 기준이 되었다. 또한 기후 변화가 본격적으로 화두가 되기 전인 1984년부터 퍼페추알 리저브를 도입해 매년의 특성을 축적하고 균형 있게 표현하려 했다. 이는 종가집 씨간장처럼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철학적 작업이며, 매년 새 시간이 들어가며 이전의 모든 해와 만나 조용히 숙성된다. 퍼페추알은 그 시간의 기록이자, 한 해의 농사와 다음 해의 기다림을 잇는 다리다.
뱅 클레어 시음 방식도 독특하다. 브루노 파이야르에서는 일반적으로 향만 시음하며, 시점도 다른 하우스보다 늦다. 기본 와인의 향은 미래를, 맛은 현재를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향으로 최종 블렌딩을 결정하는 건 시음자에게 큰 부담이지만 동시에 샴페인의 향이 스타일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욕심이나 의도를 제거한 채 테루아의 진실에만 귀 기울이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브루노 파이야드 샴페인은 대부분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 또는 브뤼 나튀르(Brut Nature) 스타일로, 섬세하고 긴장감 있는 산도와 정제된 질감이 특징이다. 브루노 파이야르는 기후 변화로 인해 포도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도사주의 필요성이 줄고 있다고 판단했고, 2000년부터 도사주 제로(Dosage Zéro, DZ) 개발에 돌입했다. 2000년 빈티지의 프레스티지 퀴베 넥 플뤼 울트라(Nec Plus Ultra, N.P.U.)를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를 리저브 와인으로 활용해 최초의 도사주 제로를 탄생시켰다. 오직 그랑 크뤼 포도와 첫 압착만으로 만들어 10년 이상 숙성하는 야심작 N.P.U.를 포기한 것은 기후 변화가 샴페인의 구조를 바꿨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그는 샴페인을 '자연의 음계'를 연주하는 악기에 비유하며, 매년 변화하는 기후에 따라 샴페인의 구조를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브루노 파이야르에게 도사주는 '숨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와인을 위한 선택지'다.
[다공성 조직의 백악질 토양 샘플]
브루노나 그의 딸 앨리스 파이야르와 함께 와인을 시음하면 그들이 읽어내는 샴페인 이야기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사주 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그들을 찾아갔다. 시음 시작 전, 앨리스가 하얀 돌을 흰 그릇에 넣고 물을 붓자 '삐리삐리리' 작게 속삭이는 듯한 고음이 들려왔다. 백악질 토양의 다공성 조직에 물이 스며들며 생긴 소리였다. 이어 돌의 냄새를 맡자 크라예르에서 맡았던 향이 떠올랐다. 이제는 백악질 냄새를 자다가도 분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라인드 시음을 준비하는 앨리스 파이야르]
첫 번째 블라인드 시음은 도사주가 와인의 균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앨리스는 일행에게 도사주가 많은 순서대로 와인을 배열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균형이 좋은 와인이 도사주가 많을 것이라고 판단해 1-2-3번으로 답했지만, 실제 정답은 정반대인 3번(4g/L), 2번(3g/L), 1번(도사주 제로) 순이었다. 앨리스는 “우리가 와인을 잘 빚었다는 뜻이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도사주 제로가 가능하다는 건 포도 자체로 이미 충분한 균형을 이뤘다는 의미다. 그 순간, 순수함의 미학에 눈을 떴다.[블라인드 시음된 브루노 파이야르 와인들]
두 번째로 도사주가 와인의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블라인드 시음이 이어졌다. 동일한 프리미에 퀴베 엑스트라 브뤼를 데고르주망 시점만 다르게 시음했다. 2024년 3월 데고르주망한 와인은 약간 볼그레한 색을 띠며, 스모크, 재, 백악질 토양, 레몬, 사과, 스타프루트 향에 흰 복숭아와 시트러스 풍미를 지녔다. 2019년 10월 데고르주망 한 와인은 미세 산화와 미세 마이야르 반응이 진행되어 색도 진해지고 훨씬 더 잘 익은 과실과 조리한 과실, 구운 향과 풍미가 인상적이었다. 스모키하면서도 더 둥글고 층이 쌓인 입체적인 질감이 돋보였다. 입맛을 돋우는 산도와 짠맛이 좋았다. 2003년 8월 데고르주망 해 22년간 병 숙성한 와인은 진한 황금색에 간장, 커피, 토스트, 흙, 버섯, 캐러멜, 초콜릿, 마지판, 말린 감, 감초, 사과 주스, 훈연, 블랙티, 화분 같은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보여줬다. 이렇게 시음하니 도사주는 과연 단기적인 맛 조절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며 와인의 일부로 흡수되는 것인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앨리스 파이야르는 제로 도사주 와인으로도 동일한 실험을 진행하려 한다며,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이제, 다시 묻게 된다
샹파뉴에서 만난 이들은 누구 하나, 어떤 사소한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들의 눈빛엔 긍정적인 의미의 광기와 집착, 소명, 그리고 몰입과 매진이 담겨 있었다. 유전자에 이런 부분이 없다면 샴페인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그들은 가장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듣고, 따라가고, 조율했다. 샹파뉴의 위대함은 바로 그 겸허한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고 늘 부족하다. 불평하거나 피하려 하기보다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바지런히 희망을 빚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이 여정의 끝에서 다시 묻게 된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까? 샹파뉴는 이미 그 답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진이 다 빠져도 좋으니 그들의 곁에서 또 한 번 배우고 싶다.
Credit Info
정수지 기자
제공 와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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