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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랑(서울특별시)

서울 상춘곡

by 서울사랑(서울특별시)

‘인터넷’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던 시절, 서울 사람들은 봄이 오면 김밥과 카메라를 챙겨 고궁이나 남산 같은 봄꽃 명소를 찾아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봄 풍경을 음미했다. 그림 같은 서울의 봄을 예찬하는 서울 상춘곡(賞春曲)은 그렇게 쓰였다.

남산으로 봄 소풍을 온 유치원 어린이들. 1986년 4월. ©서울사진아카이브

진달래를 뒤따라 개나리가 노란 물결을 이루고, 벚꽃까지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우리는 제대로 봄이 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짧은 계절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사람들은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옷차림이 가벼워진 연인의 손을 꼭 쥐고,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봄맞이에 나섰다. 김밥과 사이다를 도시락으로 챙기고, 필름 카메라를 둘러멘 채 서울의 봄꽃 명소를 찾아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나들이를 즐겼다. 1970~1980년대 봄에는 그렇게 서울 곳곳에서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곤 했다. 봄나들이는 삶을 채우는 설렘의 시작이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의 봄나들이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날이 풀리자마자 우리 식구들은 김밥을 싸고, 달걀을 부쳐 둥근 찬합에 곱게 담았다. 찬합의 한 층에 불고기를 채우고, 꼭지를 딴 딸기와 토끼 모양으로 껍질을 깎은 사과까지 가지런히 담았다. 막내인 내가 보온병에 따뜻한 보리차를 채우면 봄나들이 준비는 마무리됐다. 햇살은 더없이 따뜻했다. 우리 가족의 봄맞이 장소는 십중팔구 서울 한복판의 고궁이었다.

겨우내 고요했던 경복궁과 덕수궁 등은 봄이 오면 시민들로 북적였다. 그 시절의 고궁은 어느 공원보다 봄꽃이 풍요롭고 우아하게 피어나는 드문 명소였으니 가족 나들이객에게 인기 높은 게 당연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옛 궁궐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며 자연스러운 교육의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고궁 초입부터 철쭉과 개나리 같은 봄꽃이 만발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퍼졌다. 아버지는 벚꽃 아래 혹은 철쭉 옆에 자식들을 나란히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고, 어머니는 공원 한쪽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감쌌던 보자기를 풀었다. 우리는 연못 속 비단잉어를 구경하며 호기심을 키웠고, 부모님은 정자 아래서 느긋하게 담소를 나눴다. 그땐 뒷모습만 보이며 성큼성큼 걸어가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외식이 간절했던 우리에게 김밥을 먹이던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느꼈지만, 세월이 지난 뒤 사진첩을 넘기다가 꽃밭에 도열한 채 정면만 응시하는 빛바랜 가족사진을 마주하면 웃음이 터질 만큼 흐뭇해진다.

그 시절 또 다른 가족 나들이의 중심지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이었다. 거대한 놀이터와 동물원 그리고 넓은 녹지까지 두루 갖춘 그곳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낙원이었고,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비껴갈 수 없는 봄나들이 코스였다. 공원 곳곳에 핀 꽃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생동감을 더했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근심을 내려놓고 행복한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1988년 4월, 만개한 꽃과 궁궐의 조화가 아름다운 덕수궁. ©서울사진아카이브

연인과 친구들은 여의도 벚꽃길이나 남산 길로 향했다.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길을 따라 손을 맞잡고 걷던 연인들, 꽃잎을 머리에 얹고 깔깔대던 친구들의 모습은 따뜻해진 봄 날씨를 전하던 TV 뉴스의 단골 배경 화면이었다.

그 시절에도 여의도 벚꽃길은 축제처럼 화사한 벚꽃으로 물들었다. 길게 뻗은 벚나무들이 흩날리는 꽃잎으로 도로를 뒤덮으면 연인들은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꽃잎이 바람에 실려 공중을 떠다니던 그 순간, 그들은 곧 사라져버릴지 모를 찰나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았을 것이다.

남산은 봄이 찾아올 때마다 그 자리에 묵묵히 존재하며, 초록으로 도시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게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은 언제나 감탄을 불렀고,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진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봄의 숨결이 느껴졌다. 남산의 봄은 봄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 자신 또는 우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했다.

서울대공원의 봄나들이 인파. 2001년 4월. ©연합뉴스

여전히 아름다운 서울의 봄

시절이 흐르면서 서울의 봄맞이 풍경도 변했다. 아이들은 더 화려한 테마파크를 새로운 놀이터로 삼았고, 연인들의 벚꽃 길은 넘치는 인파를 걱정해야 하는 길이 되었다. 벚꽃 축제 기간에도 조용한 산책보다는 인증 사진을 찍고 빠르게 이동하기에 바쁘며, 스마트폰에 담긴 봄은 즉시 세상과 공유되고 ‘좋아요’와 댓글이 공감의 표현이 됐다.
하지만 봄을 맞는 마음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울의 봄을 맞는다. 벚꽃 길을 거닐며 연인과 추억을 쌓고, 따뜻한 햇살 아래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혹은 홀로 봄맞이 대청소에 나서기도 한다. 더러는 급하게 바뀐 계절을 절감하며 부모님에게 멋쩍은 안부 메시지를 전하기도 할 것이다. 옛 시절의 봄이 그립기도 하겠지만, 지금의 봄도 충분히 소중하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이 도시에서 또 한 차례 서울의 봄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 설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Credit Info
글 정명효
제공 서울사랑(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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