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다 더웠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요즘. 이상 기후 현상이 심화되면서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사계절이 무너짐에 따라 각 계절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워지면서 의식적으로 계절을 챙기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에세이스트 김신지는 [제철 행복]에서 “한 해를 잘 보낸다는 건, 계절이 지금 보여주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단조롭고 지루하다면, 계절을 챙겨보는 건 어떨까. 계절을 챙기는 건 곧 순간의 행복을 모으는 일이며, 행복의 순간이 쌓여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계절을 챙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제철 과일을 챙겨 먹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제철 과일만 있을쏘냐. 특정 계절에 어울리는 제철 도서도 있다. 사실 문예지를 비롯해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등 계절을 테마로 엮은 책들은 꽤 많다. 새 계절의 문턱에서, 시리즈물이 아닌 단행본 중 각 계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책을 소개한다. 제철 도서를 읽으며 변화하는 계절의 리듬에 발맞춰 걸어보자.
봄 (3 - 5월)ⓒ 알라딘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말은 '물'인 것 같다.
그 다음은 '고맙다'라는 말.
'물'은 나를 위한 말이고 '고맙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위한 말.
목말라서 죽을 것 같은 상태도 싫고 누군가와 눈빛도 나누지 않는 여행자가 되기는 싫다.
여행하듯 살고, 살듯 여행하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봄은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따사로운 햇볕과 만개한 꽃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을 동하게 만들고, 기어코 문밖으로 발을 내딛게 한다. 봄을 맞아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여행을 가로막는다면, 여행산문집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다수의 여행산문집을 펴낸 이병률 시인은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여행을 떠나는 생활여행자다. 여행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여행인 일상을 산다. 국내는 물론 지금까지 140개국이 넘는 곳을 다닌 그는 죽을 때까지 여행할 곳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홀로 떠난 여행에서 사람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이병률 시인의 걸음을 담았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대단하고 거창한 여행기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여행 노트다. 사진으로 시작해 목차도, 쪽수도 없는 정제되지 않은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때 그곳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게 된다.
서지정보 에세이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 달 / 15,300원
여름 (6 - 8월)
ⓒ 알라딘
더위 속에서는 수평 자세로 누워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렇게 애써 쉬는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여러 일들이 사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살수록 실감합니다.
재충전을 위한 여름휴가 도서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사실 숨은 독서 성수기는 여름 휴가철이다. 더위를 피해 여행지나 나만의 공간에서 북캉스를 즐기면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여름 휴가철에 어떤 책을 챙겨가는 게 좋을까. [여름의 빌라], [바깥은 여름], [너무나 많은 여름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제목에 ‘여름’이 들어간 책은 많고 많지만, 이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다소 뻔하고 식상하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여름과는 거리가 먼 강렬한 제목을 지녔지만, 읽다 보면 여름의 습도와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번아웃과 과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을 볶아치며 ‘갓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안부 인사 같은 책이다.
특히 호쾌한 두 여성 에세이스트, 황선우와 김혼비가 1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만든 서간 에세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글을 쓰기 위해 목탁을 치고 리코더를 부는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깔깔 웃다 보면, 어느새 한여름의 더위는 흔적도 없이 물러가 있을 것이다.
바닥에 수북한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가을은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계절이다. 알차게 여무는 곡식처럼 생각도 깊어지는 가을, 짧지만 많은 내용을 함축한 시를 읽으며 사유를 확장해 보는 건 어떨까.
[인생의 역사]는 신형철 평론가가 펴낸 시화(詩話)다. 시 한 편마다 하나의 인생이 담겼기에, 이를 풀어 ‘알자’ 하는 대신 다시 ‘겪자’ 하는 산문을 나란히 더했다고 한다. [공무도하가]와 같은 고전시가부터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비롯한 외국 시까지,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가 실렸다.
저자는 시를 읽는 일은 ‘아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라 말한다. 그의 글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명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여러 인생이 응축된 시와 신형철의 산문을 읽어내기에 아직 경험의 깊이가 깊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서지정보 에세이 / 인생의 역사 / 신형철 / 난다 / 18,000원
겨울 (12 - 2월)
ⓒ 알라딘
우린 오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
존엄한 죽음을 가능케 하는 지극한 사랑의 힘 [사랑을 담아]
황량한 겨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괜스레 죽음과 상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어떨지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아직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을 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논픽션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사랑을 담아]는 실화 기반의 에세이로,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스스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남편의 이야기를 아내의 입장에서 담은 책이다. 스위스에 있는 조력자살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인 디그니타스에 가기 위해 부부가 함께 취리히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사실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그 끝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그렇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에서 오는 엄청난 상실감을 감수하면서 존엄사라는 선택을 지지하고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사랑을 담아]는 존엄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더불어 그 제목처럼 지극한 사랑의 힘을 전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서지정보 에세이 / 사랑을 담아 / 에이미 블룸 / 문학동네 / 16,800원
제철 도서, 한층 더 즐겁게 읽는 법
독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책갈피다. 오이뮤(OIMU)의 직조책갈피는 사계절을 테마로 한다. 각 계절에 어울리는 책갈피를 책 귀퉁이에 끼워 읽으면, 제철 도서를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다.
ⓒ OIMU
ⓒ OIMU
Credit info 조윤주 에디터 제공 덴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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