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 대신 플라스틱 쓰레기가 차지한 화단, 외진 골목이면 예외 없이 수두룩한 담배꽁초. 눈에 익어 익숙해진 서울의 풍경을 새삼스레 곱씹으며 생각한다. 쓰레기통을 벗어난 쓰레기는 언제부터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나.
을지로입구역
평일 오후 6시 무렵. 순식간에 유동 인구가 불어나는 지하철 출구 앞 닳아버린 운동화가 제 짝도 없이 버려져 있다. 바닥 어딘가도 아닌 손잡이에. 엉뚱한 쓰레기 하나로 평범한 일상이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이 되는 순간.
홍대
금요일 저녁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상수역까지 걷다 만난 풍경. ‘걷고 싶은 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비닐, 스티로폼, 종이컵이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선 쓰레기통이 없는 줄만 알았다. 이 상황이야말로 비상벨을 눌러야 할 때가 아니었을까.
한남동
각종 브랜드 팝업 스토어가 일주일 단위로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쓰레기는 어딘가에서 차곡차곡 쌓이기만 한다. 일회용 컵과 페트병에 짓눌려 뚜껑을 열 수조차 없는 음식물 쓰레기통의 속사정은 어떠했을지.
성수
널찍한 화단에 자리 잡은 낡고 바랜 락스 통 하나. 그 옆으로 비교적 최근에 버려진 듯한 담뱃갑, 일회용 플라스틱 컵, 핫바 포장지가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쓰레기통 밖의 쓰레기는 어쩌면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한 번쯤이야’를 조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종각
종각역 앞 보신각 공원, 평화로운 오후를 방해하는 시위대의 쩌렁쩌렁한 외침만큼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쓰레기다. 안전을 주의하라는 경고는 종이 쓰레기 앞에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서울역
작정하고 내다 버린 듯한 자전거 타이어와 때이른 선풍기 날개 덮개. 역 근처에 비해 인적이 드문 서소문역사공원 주위를 따라 거닐다 포착했다. 키 작은 초록식물 사이 아무렇지도 않게 널부러진 뜻밖의 쓰레기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Credit Info MAGAZIN 하퍼스 바자 사진 김연제 디자인 이진미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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