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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리빙

미드나잇 인 베르사유

by 까사리빙

어린 시절 좋아한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면서 꿈꾸던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생활이 이뤄졌다. 2021년에 문을 연 호텔 르 그랑 콩트롤에서 시작해 트리아농 궁전과 왕의 부엌 정원까지 이어진 베르사유 궁과 그 일대에서 보낸 시간은 나를 18세기 프랑스 왕실의 한복판으로 이끌었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벽과 커튼, 캐노피와 침구까지 잔잔한 플라워 패턴으로 통일한 마르키스 드 푸케 스위트룸.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하룻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에 베르사유 궁에 호텔이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681년 루이 14세가 총애했던 궁정 건축가 즬 아르두앵 망사르(Jules-Hardouin Mansart)가 지은 베르사유 궁전의 한 건물이 ‘르 그랑 콩트롤(Le Grand Contrôle)’이라는 5성급 호텔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이 건물은 오늘날의 재무부에 해당하는 기관이 사용했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의 부속 건물답게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엘리트 대사와 예술가, 과학자, 작가 등이 머문 곳이었지만 1800년대 이후 방치되어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였다고 해요. 

이곳이 탈바꿈하게 된 것은 2015년에 정부가 재정 지원을 줄이면서부터입니다. 베르사유 궁 관리 기관은 운영비 충당을 위해 호텔 사업에 나서기로 하고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크리스토프 톨레메(Christophe Tollemer)의 손을 거쳐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왕궁 인테리어를 복원했습니다.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직물이나 샹들리에와 미술품으로 심혈을 기울여 꾸민 14개의 객실은 베르사유 궁전과 르 그랑 콩트롤에서 일했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유명인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저는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인 푸케(Fouquet) 후작의 취향을 복원하듯 꾸민 ‘마르키스 드 푸케(Marquis de Fouquet)’ 스위트룸을 배정받았습니다. 섬세한 대리석 벽난로와 장식적인 앤티크 가구가 18세기 베르사유 궁전으로 시간 여행을 이끌고, 벽 전체와 커튼, 침대 위 캐노피까지 통일한 플라워 패턴이 호화로운 프랑스의 역사로 초대하는 듯합니다. 베르사유 궁전 특유의 세공 마룻바닥도 눈여겨보아야 할 중요한 실내 장식 요소입니다. 섬세하게 미각을 깨우는 웰컴 디저트와 생수를 담은 은그릇 또한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투숙객들이 자유롭게 휴식을 즐기며 바로크 양식의 인테리어를 경험할 수 있는 라운지.

1 분주함 없이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체크인 데스크.
2 투숙객들이 자유롭게 휴식을 즐기며 바로크 양식의 인테리어를 경험할 수 있는 라운지.

레스토랑에서는 프랑스의 대표적 도자기 도시인 리모주에서 생산한 접시를 사용해 루이 14세의 만찬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셰프 알랭 뒤카스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려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왕의 만찬

파리 시내에서 우버를 타고 호텔에 도착한 뒤 짐을 풀고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먼저 레스토랑으로 향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미쉐린 가이드로 별 3개를 받았고, 이후 지금까지 총 21개의 별을 받은 프랑스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가 이끄는 곳입니다. 발레 무대처럼 우아하고 경쾌하게 구성한 코스 메뉴로 18세기에서 영감을 받은 프랑스 고전 요리 덕분에 화려했던 시대를 아련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루이 14세 때 리모주(limoges)에서 생산한 접시를 사용하는 점도 코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였습니다. 저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디너는 더욱 특별합니다. 왕실 연회가 떠오르는 고풍스럽고 고전적인 장식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그 시대 의상을 입은 종업원들에게 서빙을 받을 수 있는데요,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왕의 초대를 받은 듯 황홀한 코스 요리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르 그랑 콩트롤에서 숙박하지 않더라도 티타임은 이용할 수 있으니 방문하길 추천합니다. 

300년 전 베르사유 궁에서 사용했을 법한 장식과 곡선이 풍부한 의자에 앉아 다양한 종류의 페이스트리, 빈 스타일의 비리오슈 롤, 셔벗과 아이스크림, 버번 바닐라 밀푀유 등 우아한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을 오마주한 왕실의 티타임을 경험할 수 있답니다. 호텔 옆에 위치한 스위스 수(Pièce d’Eau des Suisses)에서 즐긴 피크닉은 그림 속에 들어간 듯한 아름다운 시간이었어요. 이 피크닉을 위해 서울에서부터 챙겨 온 플라워 패턴의 패브릭을 깔고 근처 마트에서 구한 과일, 과자, 음료 등을 놓으니 클로드 모네의 작품 <풀밭 위의 점심시간> 속 장면이 바로 펼쳐졌습니다. 이 밖에도 관광객이 다 빠져나간 저녁과 이른 아침에 베르사유 궁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프라이빗 투어는 투숙객만 누릴 수 있는 무엇보다 특별하고 근사한 시간입니다.

1 베르사유 궁의 주인이었던 루이 14세를 비롯한 왕의 초상화 원본을 걸어놓은 호텔의 메인 계단.
2 명화 속 피크닉 장면을 현실에서 연출할 수 있는 스위스 호수가 호텔 인근에 있다.

바로크 시대 미술품과 도자기, 화려한 곡선 장식이 돋보이는 가구와 벽 몰딩 등으로 18세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라운지.
1 베르사유 궁전 뒤편에 위치한 월도프 아스토리아 베르사유 트리아농 팰리스 호텔의 고풍스러운 외관.
2 모던하면서 화려한 상들리에와 고전적이면서 예술품 같은 원형 의자가 맞이하는 트리아농의 로비 공간.
디자인 영감을 얻었던 아치형 회랑이 소실점처럼 길게 이어져 그림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선물 같은 영감을 선사하는 호텔

베르사유 궁을 내 것처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 베르사유 트리아농 팰리스(Waldorf Astoria Versailles - Trianon Palace)로 숙소를 옮겼습니다. 여름의 녹음이 아름다운 트리아농 궁전과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 가까워 귀족과 왕족이 즐겼을 산책을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프랑스의 매혹적인 역사를 품은 웅장한 건축과 선택의 폭이 넓은 다채로운 디자인의 객실도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고전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5성급의 ‘트리아농 궁정’과 현대적인 객실 디자인을 선보이는 4성급의 ‘파빌리온 뒤 트리아농(Pavillon du Trianon)’으로 구성되어 여러 번 방문해도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저도 예전에는 겨울에 묵었는데 여름의 풍경도 보고 다양한 호텔 디자인을 경험하고자 이번 여행 때 다시 방문했습니다. 이 호텔의 잊지 못할 첫인상 때문이기도 하고요. 1층 입구와 긴 회랑을 보고 반했던 기억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공간 디자인팀 마젠타스튜디오에서 자주 선보이는 아치형 회랑은 이곳 회랑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세계적인 스타 셰프 고든 램지의 미쉐린 레스토랑도 유명하지만 겔랑 스파가 아주 훌륭하고 수영장과 사우나, 피트니스 시설 등 힐링 플레이스가 잘 갖춰져 있어 파리지앵들의 럭셔리 휴식 코스로 인기가 높다고 해요. 특히 스파는 호텔에 투숙하지 않아도 별도로 이용이 가능하니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하는 일정이라면 겔랑 스파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어보세요.

루이 14세의 만찬에 쓸 채소와 과일 재배의 책임을 맡았던 장 바티스트 드 라 캥티니의 동상.

KING’S KITCHEN GARDEN

루이 14세의 텃밭, 왕의 부엌 정원

베르사유 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편에 루이 14세의 텃밭이 있습니다. 미식가였고 일주일에 3번씩 연회를 즐겼던 왕을 위해 파티에 내놓을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필요해 늪지대를 비옥하고 드넓은 밭으로 개간한 것이 1683년의 일입니다. 루이 14세는 변호사 출신의 건축가이자 정원사, 농업경제학자인 장 바티스트 드 라 캥티니(Jean-Baptiste de La Quintinie)에게 왕의 부엌 정원의 책임을 맡겼고, 파티를 위한 농작물 재배와 함께 다양한 실험을 통해 농업 기술 발전과 전승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맛있고 보기 드문 품종의 재배를 실험해 1월에 딸기, 6월에 무화과, 12월에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온실에서 커피, 파인애플, 바나나 등 이국적인 식물을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였던 라 캥티니가 농업과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방문한 정원에 깊은 인상을 받고 원예에 매료되어 법률가로서의 활동을 포기할 정도로 정원 가꾸기와 농업학 연구에 전념했고, 결국 왕실의 채소밭을 운영하는 직책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후 왕의 부엌 정원에는 프랑스 국립조경학교가 세워졌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후학인 프랑스 국립조경학교 출신 조경가가 만든 정원이 있습니다. 

일본 황실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바 하야토가 일제강점기에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에서 시공해 1909년에 문을 연 창경궁 대온실입니다. 베르사유 궁과의 인연이 닿은 곳이라는 것을 대부분 몰랐을 거 같아요. 프랑스 정원 설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유명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흔적입니다. 왕의 부엌 정원에서는 사과와 배 같은 과실수가 양팔을 벌린 듯한 모습으로 벽에 기대서 재배하는 모습이 조형 작품 같아 인상적이었는데 이렇게 하면 과일이 크고 색도 좋다고 합니다. 현재 200종 이상의 사과와 배가 재배되고 매년 20톤의 채소와50톤의 과일이 수확되며 판매도 이뤄지는 이곳은 여전히 생명력 넘치고 풍요로웠습니다.

10 Rue du Maréchal Joffre, 78000 Versailles, France

늪을 비옥한 텃밭으로 탈바꿈한 왕의 부엌 정원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양팔을 벌린 듯한 모습의 수형은 과실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이곳만의 재배 기술이다.

Credit Info
MAGAZIN
E 까사리빙
EDITOR 권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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