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뇌 혁명의 시대. 모든 언쟁의 필승법이었던 내 맘이야! 공격도 더 이상 소용없다. 이젠 내 뇌 맘이야! 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니까. 이 1.2kg의 작은 기관은 우리의 신체뿐만 아닌 모든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인데, 당연히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 패션을 대하는 우리의 머릿속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내 맘대로 하는데 내 맘이 아니래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착장은 과연 당신만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결정된 것일까? 여기 인간의 뇌와 자유의지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살펴보자.
1980년, 미 캘리포니아의 심리학자인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근육과 뇌파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기구를 부착시킨 뒤 맘이 내킬 때 언제든 앞에 놓인 버튼을 누르라 지시했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의 정확한 시간을 기억해 함께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owlcation.com
실험의 요점은 이것이었다. 나의 의지인가, 뇌의 명령인가? 우리는 당연히 버튼을 눌러야 겠다는 의지가 먼저 생긴 뒤, 그 의지가 뇌에 신호를 보내 버튼을 누르는 행동으로 이어질 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결정 > 뇌에게 신호를 보냄 > 행동 순이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뇌는 버튼을 눌러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기 전에 이미 행동을 위한 준비를 실행하고 있었다. 무려 참가자가 기억했던 결정의 시간보다 0.5초나 앞서 말이다. 즉, 뇌의 행동 영역 활성화 > 결정 > 행동 순으로 관측되었던 것.
판단은 뇌가 하고 나는 통보받는다? 실험의 결과로만 보면 인간의 행위는 스스로의 의지로부터 발현된 게 아닌, 그저 뇌가 보낸 신호를 인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결정에 있어 인간의 의식은 별 쓸모없다는 소리. 굳건한 자아감에 심취해 있던 인간이여,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그 충만한 자존심에 치명적 스크래치가 생겨버리고 말았으니.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렇다 할 확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말 자유의지는 인간이 만들어 낸 환상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옷장을 가득 채운 저 수많은 옷들은 대체 뭘로 설명해야 하나. 핑크와 오렌지, 미니와 롱, 캐시미어와 울 사이를 저울질하며 날려 보낸 수많은 시간들은 또 어떻게?
생각보다 강력한 무의식의 힘
이처럼 자유의지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그 틈을 비집고 나타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무의식(Unconscious). 정신 분석학이 끝까지 열람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설계도는 이제 뇌과학 분야에서 떠오르는 관심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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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모르고 음료를 마셨을 때와 알고 난 뒤 음료를 마셨을 때 뇌의 반응이 달랐다는 희대의 결과를 낳은 실험,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대결은 구매 결정의 상당 부분이 이런 무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뇌과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톡톡히 실어준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선 압승을 거뒀던 펩시콜라였지만 안타깝게도 최종 승리는 코카콜라. 심지어 코카콜라임을 인지하고 마실 땐 맛을 관장하는 영역뿐만이 아닌 정서와 기억을 담당하는 전전두엽과 해마까지 함께 반응했다고 하니 당연히 더 맛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로써 브랜드의 위력이 상품의 품질을 무력화시키는 건 물론 개인의 감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제대로 증명된 셈이다.
우리는 사실 조종당하고 있어
그렇다면 본격적인 쇼핑에 돌입했을 때 우리의 뇌 안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에 의해 신나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 참고로 변연계는 감정 처리에 관여하는 뇌 구조물을 총칭하는 개념인데 시상하부, 편도체, 해마 등 우리에겐 비교적 익숙한 기관들이 자리하고 있는 주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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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놀라운 것은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의 뇌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깝게 판단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는 상황엔 세부적인 정보 탐색과 분석력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되며, 매주 구입하는 생필품이나 식재료 등을 구매할 땐 직관을 관장하는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브랜드 파워가 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뇌는 바로 태세를 전환해 세부 정보 대신 기존에 머릿속에 저장된 브랜드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이때 활동하는 영역이 바로 좋고 싫음을 가르는 편도체다. 다시 말해 오직 브랜드의 호불호만으로도 품질과 관련 없이 상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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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이미지. 이로써 그들의 노력은 헛된 게 아니었음이 판명되었다. 그 이미지야말로 오래도록 우리 무의식을 떠돌며 여느 때나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하는 큰 역할을 해내고 있으니.
저 끝까지 따르리
브랜드가 제시하는 이미지에 공감할 수 있는 것 역시 중요한 뇌의 역할이다.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지아코모 리졸 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가 발견한 거울 뉴런이 바로 이 놀라운 능력의 원천. 덕분에 우린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드라마 속 장면들이나 스포츠 경기를 보며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열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울 뉴런은 패션 트렌드를 좇는 우리의 심리를 설명하는 데에도 좋은 재료가 된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트렌드에 진심이 되었단 말인가?
답은 태어날 때부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집단에서 이탈했을 때 오는 소외감과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들에 눈높이에 맞추려는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의 중요한 역할이니까.
ⓒunireadingh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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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트렌드가 나쁜 것인가? 절대. 개인의 상황에 맞추어 현명하게만 잘 적용한다면 그 무엇보다 끝내주는 활용도를 자랑하는 게 바로 트렌드다. 넓게 보면 트렌드는 결국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은 현재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무언가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정점을 찍었을 때 비로소 변화하고 드러난다. 1920년대 여성들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던 CHANEL의 블랙 미니 드레스, 1970년대 경제 불황으로 소외된 10대 노동 계층들에서 발생된 펑크 룩 등이 좋은 예이다. 패션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시사하고, 이에 공감한 이들이 또한 패션으로 보답해 준 셈이니까. 요즘 한창 열풍인 Y2K 무드도 마찬가지다. 개성을 중시하고 자신을 서슴없이 표현했던 2000년대의 자유로움과 신선함이 여러 사건들로 지친 요즘의 MZ세대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는 것.
내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고
A군은 젠테 스토어 장바구니에 담아둔 물건들을 보며 지상 최대의 고민에 빠져있다. KAPITAL의 알로하셔츠와 OUR LEGACY의 오버 셔츠 재킷, VISVIM의 레이스업 부츠, NEEDLES의 트랙 팬츠, sacai와 CARHARTT의 최신 콜라보 아이템까지. 이토록 예쁜 게 가득한데 도무지 뭘 사야 될지 몰라 울상이다. 다 맘에 들면 다 사면되지 않는가? 아니다. 우리의 A군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활발한 구매활동을 펼치는 똘똘한 친구니까. 하지만 그렇게 결정의 시간은 점점 멀어져 결국 하루가 꼬박 지나고 마는데…
반면 B양은 달랐다. 젠테 스토어에서 최저 가격으로 완전 득템한 PRADA의 후드 패딩과 MIU MIU의 캐시미어 카디건을 입어보며 거울 앞에서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다. 허나 이런 B양을 본 그녀의 어머니, B양에게 잔소리를 시전하기 시작한다. 넌 왜 매번 똑같은 옷만 사니?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페이스북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미는 이야기. 아마 이 글을 읽는 상당수가 공감의 고갯짓을 날리고 있을 거다. 세상엔 당장의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리는 사람들이 태반이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니, 바로 불안과 공포에 빠진 뇌다.
이들에겐 분명 쇼핑에 장렬히 실패해 본 뼈아픈 과거가 있을 것이다. A군은 수많은 선택지를 뚫고 고심 끝에 고른 옷이 막상 맘에 들지 않았던 경험으로, B양은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파격적인 아이템을 골랐다가 한 번도 입지 못하고 옷장에서 썩혔던 경험으로 말이다.
40년 동안 같은 옷을 입고 졸업앨범 사진을 찍은 교사, 데일 어비 ⓒpinterest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경험을 끈질기게 저장하는 습성이 있다. 슬프지만 생존을 위해서다. 오랜 기간 동안 트라우마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미국의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 교수는 우리가 나쁜 기억을 떠올릴 때 이성이나 인지 기능을 관장하는 기관은 힘을 잃고 대신 감정을 관장하는 우뇌 쪽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 자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A군과 B양이여, 그렇다고 해서 절대 쇼핑을 멈춰 선 안된다. 새로운 경험 속에서 발생할 좋은 기억들이 나쁜 기억들을 희석시킬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극복의 팁이라고 하니까.
적당한 도파민으로 힐링하세요
너 도파민 중독이야! 요새 가장 떠오르는 키워드로 급부상한 도파민(Dopamine). 몰입과 쾌락의 호르몬인 이 물질은 보상의 기회를 포착함과 동시에 뇌에서 분비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원하는 게 눈앞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기대 심리에 의해 도파민이 뿜뿜 샘솟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윽고 우리 손에 들어왔을 때, 뇌는 도파민 샤워를 받으며 성취감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문제. 자칫하면 여러 중독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쇼핑도 마찬가지다. 견물생심. 물건을 보면 마음이 생기리니. 우린 결코 쇼핑을 멈출 수 없다. 차라리 어떻게 하면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을지를 파악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려면 일단 좋아하는 것(Liking)과 원하는 것(Wanting)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절대. 심리학자 켄트 베리지(Kent C. Berridge)에 따르면 이 둘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좋아하는 것이 선호 또는 애호에 가깝다면 원하는 것은 욕망 그 자체다. 결국 가장 베스트는 이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인데, 이게 참 어렵다. 욕망을 관장하는 도파민 시스템이 우릴 계속 쾌락의 신호로 자꾸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선 마음을 가다듬어라. 저 옷이, 저 가방이, 저 신발이... 진정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잠깐의 소비로 얻어진 만족감과 우월감이 우리로 하여금 패션을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들었다면 일단 멈춰라. 그리고 잠시 생각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 있다면, 그땐 가감 없이 질러라. 그리고 마음껏 즐겨라. 후회 없이.
Credit Info 에디터 과학을 잘하고 싶은 주단단 제공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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