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수많은 브랜드들이 피고 지는 패션계.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대중의 관심을 꾸준히 붙잡아두어야 함은 물론 끈질긴 노력과 굳건한 신념까지 든든히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 게다가 평단의 주목도 이끌어내야 하니 어설픈 흉내만으론 택도 없다.
허나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 한들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다 소용없다. 그렇지만 넘쳐나는 천차만별의 스타일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 역시 좀처럼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준비했다. 런칭 5년 미만, 패션계 뉴 페이스들의 따끈따끈한 스토리를.
MAINS
런웨이 피날레에 등장한 MAINS의 디자이너 스켑타(Skepta)와 그의 딸 ⓒtheguardian.com지난달 성황리에 막을 내린 런던 패션위크에서 첫 캣워크를 선보인 MAINS. 브랜드는 몰라도 디자이너는 다 알만한 사람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뮤지션 스켑타(Skepta). 정말 많은 음악계의 거장들이 패션계로의 진출을 선언해 왔지만, 요번엔 좀 다르다. 익숙한 래퍼 이미지도, 진부한 스트리트 스타일도, 서브컬처에 의지하는 디자인도 여기엔 없으니까. 덧붙여 이번 컬렉션은 Ralph Lauren의 아메리칸 프레피 느낌을 참조했다고 하는데 래퍼의 첫 행보치고는 다소 의외이긴 한다.
MAINS 2024 SS ⓒvogue.com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패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패션에 대한 지식은 누구보다 으뜸임을 자부한다. 좋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조건은 제작 기술보다 패션 지식이라 확신하며 말이다. 주변에선 그를 '패션 백과사전'이라 부른다고.
그가 이토록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다. 훌륭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2021년엔 스켑타와 NIKE의 콜라보 슈즈는 매니아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고 2022년 소더비 경매에선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 한화 1억 5천에 팔렸다고 하니 이쯤 되면 그의 타고난 재능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어야 할 듯.
스켑타가 직접 그린 작품 ⓒsothebys.com
스켑타와 NIKE의 콜라보 슈즈 ⓒnike.com
MAINS 2018 런던 팝업 룩북 ⓒdazeddigital.com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마틴 로즈(Martine Rose), 다니엘 리(Daniel Lee) 등을 자신의 우상으로 꼽은 것도 예사롭지 않다. 모두 자신만의 확고한 무드로 세계를 사로잡은 인물들이니까. 스켑타 역시 그들을 롤모델 삼아 패션계의 한 획을 그을 작정인가 보다. 데뷔 무대치곤 괜찮은 완성도라 평가받은 이번 2024 SS 컬렉션. 색다른 트랙 슈트 착장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스포츠 웨어를 만나볼 수 있는데, 편안하면서도 결코 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룩을 갈망한다면 반드시 새겨야 할 브랜드로 추천한다.
MAINS 2024 SS ⓒvogue.com
WHO DECIDES WAR
WHO DECIDES WAR의 디렉터 에브 브라바도(Ev Bravado)와 그의 파트너 테라 다모레(Téla D'Amore) ⓒnssmag.com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의 후예가 나타났다! WHO DECIDES WAR의 디렉터 에버라드 베스트(Everard Best)는 버질의 Off-White 협업을 통해 먼저 입소문을 탄 인물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후광에 휩싸여 화려한 패션계 데뷔를 치른 그는 이후 Ev Bravado라는 브랜드를 런칭하며 독자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활동명 역시 동일한 에브 브라바도(Ev Bravado)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Ev Bravado 2019 룩북 ⓒvogue.com
하지만 에브에겐 좀 더 큰 판이 필요했다. 그는 Ev Bravado의 성공에 힘입어 지금의 WHO DECIDES WAR를 런칭하고, 파트너인 테라 다모레(Téla D'Amore)와 함께 럭셔리 캐주얼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다.
WHO DECIDES WAR의 의상에선 역시 버질의 기운을 받은 사람답게, 강한 문화적 향취가 풍긴다. 스프레이 페인팅과 카리브해의 풍경, 과감한 원색의 사용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전인류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명답게 종교적, 사회적인 시그널을 가감 없이 담아낸 부분도 인상적.
WHO DECIDES WAR 2022 SS
WHO DECIDES WAR 2023 SS ⓒvogue.com데뷔한 계기도 얼마나 숭고한 지 모른다. 양복점을 운영했던 부계 가족들 덕에 인생의 시작을 옷과 함께 맞이했다는 에브. 그는 디자이너의 길을 인생의 소명이라 여기며, 자신의 작품이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된 것이 아닌 조상들의 작품과 함께 태어난 것이라 믿고 있다. 이 엄청난 신념이란!
특히 돈독한 관계였던 버질의 죽음을 추모하는 2022 FW 컬렉션, 성당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테인드 글라스 패치 디테일이 돋보이는 2024 SS 컬렉션은 꼭 주목해야 할 중요한 런웨이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에브만의 재치로 해석한 게 킬링 포인트.
WHO DECIDES WAR 2022 FW
WHO DECIDES WAR 2024 SS ⓒvogue.com
S.S. DALEY S.S. DALEY의 디자이너 스티븐 스토키 데일리(Steven Stokey-Daley) ⓒshowstudio.com2022년 LVMH 프라이즈의 주인공 스티븐 스토키 데일리(Steven Stokey-Daley). 그는 2021년 자신의 이름을 딴 S.S. DALEY의 데뷔 컬렉션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그는 훨씬 이전부터 남다른 이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의 학사 졸업 컬렉션이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의 스타일리스트의 러브콜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후 Alexander McQueen와 TOM FORD의 남성복 팀에서 근무하며 기술까지 연마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을 것.<Golden> 뮤비 촬영장에서의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showstudio.com그의 컬렉션은 편견으로 굳어진 이 시대의 '남성상'을 깨기 위한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다. 진흙투성이 럭비 경기장 대신 정원과 꽃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박해받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오히려 창조의 영감으로 작용한 것. 그래서인지 그의 의상 속엔 유독 플라워 디테일이 많이 등장하는데, 프린트와 자수는 물론 장식으로도 적극 활용해 로맨틱한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며 남성복에 씌워진 뻔한 프레임을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2021 FW, 2022 SS
2023 SS, 2023 FW ⓒvogue.com가장 최근 런웨이인 2024 SS는 20세기 중반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었는데, 젊은 시절의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진들을 연구하여 전체적인 무드에 그대로 반영했다고. 자칫하면 평범해 질 수 있는 니트웨어에도 강아지와 오리 등 귀여운 동물들을 수놓아, 유머러스한 감각을 함께 표현했다.
24살의 루시안 프로이드, 호텔 방 1954 ⓒvogue.co.uk, ⓒforbes.com
요즘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악한 AVAVAV 2024년 봄 런웨이의 괴상한 풍경. 번진 메이크업과 흐트러진 헤어,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착장까지 이게 런웨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반전 콘셉트는 모두 다 관객과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한 발칙한 아이디어. 덕분에 우린 AVAVAV란 이름을 절대 잊지 못하게 되었으니, 작전이 제대로 성공했다.
AVAVAV 2024 SS ⓒvogue.com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이런 난장판 쇼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년 FW에선 모델들의 착장이 하나씩 무너지다가 마지막엔 세트장 벽까지 무너져 버리는 놀라운 콘셉트를 보여줬었다. 이런 전작의 충격에서 미쳐 헤어 나오지도 못했는데, 요번에도 관객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다니... 그야말로 놀라운 배짱!
어떻게든 화제를 끌어내야만 하는 패션계이기에, 귀여운 발상으로 한 두 번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 만약 내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꽤나 실망할 듯하다. 벌써부터 퍼포먼스에 치우친 런웨이를 향한 혹독한 평가가 하나둘씩 올라오는 걸 보면 말이다.
AVAVAV 2023 FW ⓒthewalk.com.mx, ⓒvogue.com
하지만 AVAVAV의 작품엔 숨겨진 깊이가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지속 가능성을 가장 우위 가치에 두고, 모든 의상을 재고 원단과 자투리 원단으로 제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강렬한 런웨이에 가려져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지만.
이를 위해 그들은 원단을 먼저 수집한 뒤 의상 구상을 이어가는, 다소 실험적인 제작 방식을 택했다. 무척 힘겨워 보이지만 디자이너는 매번 퍼즐 게임을 즐기는 기분이라고. 역시 즐기는 자를 이기긴 어렵다.
AVAVAV 2023 SS 룩북 ⓒshowstudio.com
Credit Info 에디터 주단단 제공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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